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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요

들깨 추수

김병일 0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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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신춘문예 신앙시 '당선작'


들깨를 베어 눕힌 지 일주일

가빠를 펴고 들깨털이를 한다.

도리깨 끝에서 비명을 지르며 탈출하는 알맹이에

알싸한 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집을 잃고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씨알보다

더 많은 벌레가 따라 나왔다.

유난한 가뭄에 햇살 이고 견딜 때부터 장하다 했는데

저리 많은 벌레를 품고 견딘 것이 놀랍다.


동그랗게 작은 것이

모질게 엉겨 붙는 벌레 틈바구니에서

제 살 내어주면서 견디어 낸 그 아품이 오죽했으랴만

그래도 적과의 동거만이 자신을 지키는 운명임을 깨닫고

참으며 지켜낸 강인함이 무쇳덩이로 커 보인다.


어레미를 빠져나간 깨알들은

미운 정으로 맺어진 벌레라도 이별이 서운한지

여름 내내 베푼 사랑이 아쉬워서인지

키에 앉아 일렁이는 파도를 타면서 또 다른 삶을 모색한다.


들깨의 인고는 무지개로 빛나고

짙은 향은 바람에 날려 들판을 덮는데

신의 섭리를 거역하고 내 뜻대로 살아보려 버둥대다가

무너지고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이

깨알보다 작아지면서 부끄럽게 다가온다.


깨알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깨알의 사랑과 자연의 이치가 신비스러워서

자꾸만

그 작은 동그라미를 어루만져 쓰다듬는다.


시, 김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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