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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사진과 영상으로 말해요

감사! 감사! 감사!

김병일 0 327

청년의 때 두려움의 터널을 지난다. 

불안의 터널을 지난다. 

사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막막하다. 

답답하다. 

두렵다. 

불안하다.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 뿐인듯 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개인적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문제는 고통에 대해 해석이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다윗의 경우 하나님과의 단절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의 초대였다. 

요나단, 사울, 압살롬의 상실의 아픔은 상처입은 치유자로의 초대였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 흔적으로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제가 된다. 

흉터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기 싫고 보여주기도 싫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만져주신 상처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 된다.


야곱의 환도뼈가 골절된 것은 하나님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야곱의 이스라엘됨을 의미한다.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 싫을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안다. 

고통스러운 흔적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의 자국이라는 것을 . . . 

그는 절뚝거리며 걷지만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그 무엇보다 사랑의 하나님을 깊이 느끼는 인생이 된 것이다. 

고통에는 다 뜻이 있다.


고통에는 길이 있다. 

다윗은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던 그때에 아둘람굴에 모여든 사람들과 더불어 다윗왕국의 길을 열었다. 

하나같이 볼품없는 인생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둘람굴에 머물렀다.


아둘람굴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고통 가운데 우리가 머물 곳은 아둘람굴이다. 

사람을 찾아 다니며 하소연하면 세번까지 들어주지만 네번 다섯번 말하면 짜증을 내고 열번 말하면 분노한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욥의 친구들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욥은 결국 하나님 안에서야 고통이 해석되고 삶의 문이 열려진다. 

고통의 끝에는 새로운 길이 있다.


고통에는 역설이 있다. 

다윗의 고통은 진주와 같이 빚어졌다. 

우리는 진주만 본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깨달음은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흘린 조개의 눈물을 볼 구 있어야 한다. 

조개는 모래가 들어오면 아야 아야 너무 아퍼요를 외치며 눈물을 흔린다. 

그때마다 조개의 눈물은 쌓이고 쌓여서 보석이 되어 간다.


다윗은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을 주의 눈물병에 담았다. 

그 의미는 주의 지성소로 들어가 임재 가운데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대충 드리는 가도가 아니다. 

진액을 쏟아내는 기도이다. 

선택과 결단의 순간이 있다.


다니엘은 고통의 시간에 뜻을 정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였다. 

그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이다. 

세상은 그것을 먹고자 발악을 하고 발광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거룩을 선택하고 결단한다. 

우리는 다니엘이 10배의 명철을 받고 총리가 된 것 중심의 결과들만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 보아야 하는 것은 그가 성공과 출세로 부터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 위험과 불안, 숱한 부담감을 넘어서는 용기이다. 

우리는 하루 3번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져지고 사자의 입막음을 통해 건짐받은 은혜만 기억 한다.


그러나 그에게 일어난 역설의 기적은 사자의 밥이 될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서는 믿음의 선택과 결단이 있었음을 보아야 한다. 

고통에는 역설과 역전의 은혜가 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너무 얕은 물가에서 찰삭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고 맘이 조려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믿음의 도전이 없으니 믿음의 열매도 없다. 

믿음으로 뜻을 정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 인도하심, 역사하심의 하나님 경험도 빈약하다.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느껴라. 

그래야 산다. 

고통은 좋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고통이 있다는 것은 내 몸이 나쁜 바이러스와 균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은 정상적이다. 

누구나 다 고통의 문제와 씨름한다. 

혼자 고민하고 극단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지 말라.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나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영적싸인이다.


고통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길을 만들고 역설과 역전의 은혜를 경험하자.


닉부이치치처럼 웃으라. 

그는 바꿀 수 없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더 나아가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꾼다. 

그것이 신앙의 진정한 힘이다.


절망하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나에개 주어진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걸으라. 

최고의 삶이란 세상의 소유, 명예, 힘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삶이다. 

최고의 성공이란 험한 길을 걸을지라도 밤낮 기뻐하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이다.


이상갑목사, 곤고한 날의 감사, 삶을 치유하는 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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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닉부이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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