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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초월한 찬송

김정민 0 159

상황을 초월한 찬송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찬송의 수평적 의미는 육신의 한계 즉, 상황을 초월하여 부르는 찬송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좋은 예를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의 선교 여정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에 있는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오클레소프 장군이 이끄는 조지아 주 이민단의 소속 목사로 1735년 10월 중순 시몬드호를 타고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으로 인해 요한 웨슬리 자신뿐 아니라 선원들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찬송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함께 승선하고 있는 26명의 모라비아 교도들의 평안에 넘치는 찬송의 소리는 선교사라고 뽐냈던 요한 웨슬리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의 체험을 '오늘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날 중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날'이라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배가 거의 침몰해 가는 상황에서 모라비아 교도들이 뱃전에 둘러앉아 찬송했던 것은 결코 웨슬리에게 감동을 주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반석이 되신 주님께 영혼의 닻을 내리고 그의 영광을 찬송함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날 보았던 그 놀라운 현상은 한줄기 빛이 되어 웨슬리의 가슴에 남았고 결국 그 빛은 2년간의 조지아 주 사역을 쓰라린 패배로 장식하고 본국에 돌아갔던 그를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성령 체험으로 이끈 한 줄기 서광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우리는 빌립보 감옥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일로 무고하게 매를 맞고 투옥된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2000여 년 전이니까 그 감옥 안의 모습은 지금 교도소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 23절에 보니까 많이 때린 후 가뒀다고 했습니다. 발에는 차꼬를 채우기까지 했습니다. 몸도 많이 상했을 것이고 굶주리기까지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가 밤중쯤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라고 했습니다. 죄수들이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십중팔구는 비웃었을 것입니다.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원망과 저주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아무 죄도 없이 매를 맞고 갇히게 된 그들이야 어서 풀어 달라고 아우성치고 울부짖는 것이 당연하겠거늘, 전혀 그런 항변 없이 오히려 주께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으니 어찌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거기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미쳤다고만 생각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상황에 굴하지 않고 찬송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 중 일부에게는 심한 영적 도전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의 입에서는 이런 고백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하, 예수쟁이들은 역시 다르구나! 보아하니 억지로 하는 것 같지는 않고 평소에 떠들어 대기를 기쁨, 소망, 감사, 평안 그런 것들이 모두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런가 보구나…’그렇다면 그날의 사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과 실라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자신들이 수없이 외쳤던 복음을 확증해 보이는 것이요, 듣는 이들에게는 단편적으로나마 들었던 복음의 능력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군대 생활을 할 때입니다. 저는 1990년 3월 27일 입대해서 석 달간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27사단 '이기자'부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곳은 훈련 사단으로 행군으로 힘들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더구나 저는 81mm 중화기 중대에 속해서 행군할 때마다 무거운 포를 어깨에 메고 다녀야 했습니다.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서 문뜩 행군할 때마다 버릇이 하나 생긴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들릴 듯, 말 듯 찬양을 하면서 행군을 하면 힘도 별로 안 드는 것 같고 행군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행군할 때마다 흥얼거렸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늘 옆에서 같이 걷던 고참병이 넌지시 제가 물었습니다.

"김 일병. 너는 행군이 힘들지도 않나? 무슨 노래를 그리 흥얼거리면서 행군을 하나? 힘이 남아도나 보지?" "네, 힘이 남아서 부르는 게 아니고 이 노래를 부르면 힘이 납니다. 그래서 늘 부릅니다!" "이 사람아 그럼 혼자 부르지 말고 같이 부르자고. 좀 배우게 크게 불러봐!!", "네 알았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높이 외치세~!"

이렇게 해서 우리 소대는 행군할 때마다 <호산나>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것이 우리 소대가가 되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처음에는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른 체 신나게 따라 불렀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자들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도 24명의 청년들의 행군나팔로…. 이는 제가 의도했던 바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전 단지 찬양을 부르며 행군하면 힘이 나고, 즐거웠을 뿐입니다. 아마 그때부터 그들의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났었던 것 같습니다. 상병 말호봉이 되었을 때 전 중대 군종이 되었고 마침내 우리 소대원 전원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소대원이 모두 교회에 나오는 날. 예배시간 특송 때 부른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높이 외치세~ 주의 이름 높여~ 다 찬양하라~" 저는 단연코 복음의 시작이 이등병 때 행군하면서 불렀던 찬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땅 위에 살면서 빌립보 감옥 같은 억울한 상황, 군대 행군과도 같은 힘든 지경에 가로 놓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진학, 취직, 사업, 가정, 건강 등의 문제로 인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가 외쳐온 복음의 능력이 과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나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처럼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고 늘 하던 것처럼 주님을 찬송하면 자신의 믿음을 많은 사람들 앞에 확증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그동안 외친 모든 것이 허상임을 본인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찬송은 크고 아름다운 복음의 나팔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방편인 반면에, 그동안 수없이 외쳐왔던 복음의 능력을 확증해 보이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글, 김정민 목사
찬양사역자
예림의집 카페지기
예림의집 선교단 운영
복음전함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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