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자족에 대한 오해 - 노진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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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자족에 대한 오해 - 노진준 목사

감사하기 어려운 사람들 참 많이 있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중에는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요한이 밧모섬에 있으면서 그래도 불에 타 죽지 않고 살아서 귀향 가 있으니깐 감사하다고 말했거나 그래도 한끼 먹을 것이 있다는 음식에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너무 괴로웠고 너무 억울했고 여전히 고난중에 있으면서 매를 맞고 핍박을 당하고 있는 그런데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 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여서 기도조차 할 수 없을만큼 답답하고 당황스런 상황 이었을 겁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바울이 내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하고 그가 일체의 비결을 배워서 내가 자족하는 법을 배웠기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 했을때도 사도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그렇게 만족하지는 못해요.

여러분 곧 예배당을 옮긴다고 들었거든요.

여기도 괜찮은데 왜...;;;

왜 그리러 가려고 하세요?

여기도 괜찮은데..

여기도 제가 보기엔 참 좋아보이는데 만족하지 않으세요?

이게 만족스럽지 않은가요?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것에 항상 자족한다는 말의 의미가 주어진 상태에 대한 만족을 의미해야 해서 비록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그 환경에서 감사해야 된다고 하고 자족해야 된다고 말하면 그 말은 자칫 태만함으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성적이 만족스러우세요?

만족스러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은 아니죠.

조그만 더 했으면 좋겠죠.

그냥 조금만 더..

여러분들 수입은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조금만 더 벌면 좋겠잖아요.

많이는 필요없어요. 조금만 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잘못된 겁니까?

그건 불만족스러운 상태라고 말을 해야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예배당을 옮겨가면서 설레는 마음들 제가 보기에도 보기 좋아요.

현재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인데 현재의 "상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어요.


바울이 자족할 줄 안다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여기가 너무 좋다..' 여기서 주는 밥이 진짜 맛있어 그래서 난 여기서 이거 먹으면서 살꺼야 이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잖아요.

오히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자족이라는 것은 내가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함에 처할 줄도 알고 내가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함에 처할 줄도 알아서 이 모든 일에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상태"와 "조건"에 만족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만족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조금 더 넉넉하게 하신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만족하겠다는 이야기는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겠다는 말이겠죠.

나로 하여금 비천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를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가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건 조건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좋은 집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직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직장 때문이 아니라 그 직장을 주신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 일에 감사하고 그래서 안돼도 감사하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감사를 상황과 환경에 대한 저항의 감사라고 부르겠습니다.

감사는 세상에 있는 것들이나 세상이 우리를 다스리는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음을 알리는 저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월터 브루그만이 쓴 책 제목인 "안식은 저항이다"라는 말에서 빌려왔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생때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었어요.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습니다.

딸랑딸랑 종을 치며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본 것이 있습니다.

제가 돈버는 재미를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돈을 버는게 너무 재미 있어서 돈을 자꾸만 버는게 무서워서 제가 아굴의 기도를 했어요.

너무 부하게도 마시고 너무 가난하게도 마시옵소서.

내가 너무 부하면 교만할까 두렵고 너무 가난하면 도둑질 할까 두렵습니다.

그 기도했는데 다른 기도는 안들어 주시더니 이 기도는 딱 들어주시더라고요.

권총강도 두 번 만나고 도둑 두 번 맞으니깐 두 달동안 열심히 장사하고 딱 30불 남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장사를 할 때요.

장사가 제일 잘 되는 시간이 언제냐면 주일이에요.

주일 오후가 돈을 제일 잘 벌고요.

수요일 저녁이 돈을 잘 벌어요.

예배만 마치면 장사가 그렇게 나가고 싶은 거에요.

뭐 교회에 별 일도 없는데..

내가 나가서 돈 좀 벌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주일을 구별하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율법적인 의무도 아니고 복을 받기 위한, 혹은 벌을 면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라 이것은 자발적인 저항적 고백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있는 것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고백이고 이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세상의 원리에 대한) 저항적 고백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주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6일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나의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루어 가심에 만족하며 철저히 주를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포, 노진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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