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 김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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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 김병일 목사

김병일 0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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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본문 : 요한복음 5:19~25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치유는 누가 하는가?

뉴욕의 컬럼비아 프레스비터리언 병원 현관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치유는 지극히 높은 자로부터 온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 주간 힘드셨나요?

아니면 지난 한 주간 괴로우셨나요?

사람이 힘들거나, 지치거나, 괴로울 때면…, 왠지 우울해 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게 반복적으로 찾아온다고 느낄 때…, 혹시(!) 이전에 (임시방편으로)썼던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또 다시 발버둥 치며 견뎌 낸 건 아닌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반복되며(!)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요.

그래서 누구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다~ 자기에게 적용되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요한일서 1장 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에(요1:1)” 그리고 “태초부터(요일1:1)” 우리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가보지도 않았는데…, 믿어진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믿어지는 것을 두고…, 정말이지 감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세히 보고(요일1:1)” 이 정도로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는 건 즉, 사실을 보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히11:1)’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이는 것처럼…,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믿어진다는 건, 어디선가(!) 어떤(!) 신기한 능력이 지금도(!)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5장 시작부분에선,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5절을 다 함께 보겠습니다.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중풍병자)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언제?)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먼저 5장의 전 부분, 4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는 상반되게 5장 시작부분부터,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두 이야기를 볼 때, 신분의 높이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물론, 38년 된 병자도 예수님은 치유해 주셨습니다.

신분이 높다고 해서 치유해 주시고, 신분이 낮다고 해서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치유해 주셨습니다.


때는, 안식일(9절)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정해놓으신 쉼을 위한 거룩한 날(창2:1) 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도 지금도(!) 유대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자기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으로 구별하고 있었기에, 특별한 안식일로 축복의 날로 지켜 왔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민족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 엄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애굽 종살이 430년,

그리고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약1500년,

이들에겐, 온통 모세의 율법만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것도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전의 율법을 폐하고(히7:18) 율법을 다시 완성하기(롬13:8,10) 위하여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아들 하나님은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38~40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날에…, 어떻게(!) 다시 살리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율법의 완성으로, 즉 완성된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이 완성된 율법은 사랑인데, 이 사랑으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를(!) 믿는 자를 말입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5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 사이에, 그것도 누워있는 한 병자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이렇게요.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그 장소에 얼마나 많은 수의 병자가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장소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위하여(!) 아들 예수님은…, 가장 오래된 병자 곁으로 다가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위한 일만 생각하신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7절입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는, ‘네~ 주여(!) 낫고자 하나…’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병자의 살고자 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예수님께서 병자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라고 했을 때, 병자도 즉시…,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 절 7절에 보면, 병자가 “주여(Sir)”라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이러한 저러한 이유 때문에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고, 낫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상태에서 점잖은 사람(선생)이 다가와 뭍 길래 힘없이 대답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분명, 병자에게도 왠지(!) 믿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걸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의 의지를 죽이고 순종하였던 병자는 치유를 받게 됩니다.

먼 훗날, 베드로도 이와 같이 했더니 나면서 못 걷게 된 병자(행3:6)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순간을 보면서…, 치유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믿음이 찾아오면, 즉각적인 반응으로 순종하셔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도, 못 걷게 된 병자도, 하늘의 기적을 사모하며 믿고 순종하였더니 치유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항상 믿음의 사람은, 어느 때든…, 어느 장소든…, 기적을 사모하는 마음(믿음)의 중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꼭 이럴 때 보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상황을 더 극대화 시킬 수도 있다지만(!) 결국은 마귀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사건건 이전의 율법을 내세워 예수님의 행하심에 박해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요한복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건이, 가장 낮은…, 가장 천한…, 가장 오래된 병자가 치유함을 받은 그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만을 가르침으로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모든 행하심에 있어 방해(박해)만 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족쇄에 묶여 참 진리(예수)를 바르게 볼 수 없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요한복음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시편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전은 그냥(!) 건축일 뿐입니다. 집은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

그곳에 “쉐키나” 하나님의 영광(임재)이 없다면, 그곳에서 하는 모든 열심(열성)은 다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시, 성령의 조명아래에서 자신의 믿음을 자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있는가(!) 누구를 위해 예배하는가(!) 누구를 위해 섬기는가(!) 등등… 말입니다.

이전의 율법에 메여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중요한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말씀해 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5장 19~20절을 보겠습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은, 조금도 착오가 없는 그리고 절대 벗어나는 일도 없는 가운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테두리 안에서만 순종합니다.


19절에,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즉,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는 한’ 그 다음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즉, ‘아무 것도 질서를 벗어나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들 하나님은 질서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며 일하셨다(요5:17)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스스로(출3:14)”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직접 표현하신 말씀이셨습니다.


20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유대인들, 박해하는 사람들)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작은 믿음도, 아버지 하나님은 이처럼 더 큰 역사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아들 하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절대 의지 하셨습니다.


본문 5장 21~23절을 보겠습니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이라면,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일 것입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외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롬11:13)였던 사도 바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하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방인의 하나님으로 오신, 아들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따르는데 모든 걸 걸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에게 모든 권세와 권능 그리고 심판까지도 다 맡기셨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21절,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저와 여러분이 복음으로 다시 살아난 것은 바로 이 말씀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믿어왔던 역사적 구속에서 벗어난, 세상 이방인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모두에게도 유대인과 똑 같이,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우리는 아들 하나님을 더 공경안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더 공경하는 아들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장 24~25절을 보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심판 주 되시는 아들 하나님, 이제는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도리요, 공경의 질서요, 심판의 영생인 것입니다.

이 모든 진리를, 우리는 누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까?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으로(요14:26)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구절을 한번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2절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지금부터 영원까지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강의 주님을 바라볼 때, 모든 두려움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령으로 알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 그 뜻은 아들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야 하는 그 때는 과거 미래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이 믿고자 결심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찾아 올 것입니다.

이 생명을 듣는 자, 즉 영원한 생명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말씀대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20.7.19 주일설교

글, 김병일 목사

축복성교회 담임

교회정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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