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에, 그 자리에 있었는가? - 김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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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에, 그 자리에 있었는가? - 김병일 목사

김병일 0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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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할 때에, 그 자리에 있었는가?

본문 : 마태복음 6:5~8,14~15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어제는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의 날입니다.

매순간마다, 대한민국 민족이라면 광복의 숭고한 뜻을 항시 생각하여야 하며, 그 긴 시간동안 빼앗겼던 나라의 아픔과 그 고통이 어떠했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SNS를 보면, 광복의 감사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픈 상처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주권을 잃은 35년의 식민지의 아픔, 그리고 남과 북의 다른 사상과 이념으로 같은 민족을 죽여야만 했던 3년간의 전쟁의 아픔, 그리고 다시는 그 아픔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노라 싸우며 왔던 75년의 수많은 아픔들…, 이 대한민국의 민족이라면 근대에 있었던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35년과 광복 이후 지금까지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는 75년의 긴 세월(!) 아직도 대한민국은 이 아픔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그 긴 터널의 끝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지만 오늘도 싸우는 그 한사람(의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희망을 어두움으로 절대 가리지 않는 이상, 이 땅과 나라는 반드시 회복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대하시느니라” 개역한글로 보면 “~향하시느니라” 즉,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의 그 장소(자리)를 향하시고 그들의 얼굴을 맞대셔서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눈과 귀는 항상 의인 그 한사람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의 귀는 의인 그 한사람의 간구(청원)에 귀기우리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즉, 세상으로 갔던 아브람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조카 롯에게 땅의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브람과 롯 가축의 목자들끼리 땅의 먹을 것을 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 다툼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창세기 13:8~10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여기서 하나님은 왜(!) 두 사람에게 땅의 복을 많이 주셨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왜(!) 두 사람의 식솔과 가축의 수가 늘어날 것을 아시면서 더 넓은 기름진 지역으로 두 사람을 인도하지 않으시고…, 왜(!) 그렇게 넓지 않은 지역으로 인도하셔서 결국 땅의 것으로 다툼이 일어나도록 하셨을까요?


이때 아브람은 아브람대로 하나님의 편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었고, 롯은 롯대로 땅의 편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롯은 그렇게 소돔과 고모라까지 모든 식솔과 가축을 데리고 옮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은 의인인 롯 한사람을 위하여 유황과 불의 심판을 지연했다(창19:15~16)는 것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다(창18:2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아들, 창18:10)보다, 조카 롯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재차 기도하며 조카 롯의 생명을 걱정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의인 한사람, 누구죠? 1명의 롯을 위하여 천사 둘을 급히 보내셨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나라가 진정 걱정되십니까?

내 가족들…, 내 자식들…, 진정 걱정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며, 기도가 내 가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른 건 순종을 잘하면서, ‘기도하라’는 순종은 그동안 뒤로 미루지 않았는지(!) 진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했던 순종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간구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으로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롯을 불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의인인 한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이 지구촌이 지금도 쉬지 않고 시계 초심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마귀와 우주 만물에 당당히 보이시고자…, 특히 내 사랑하는 언약의 백성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이 임하시고자, 지금도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에 따라 일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늘도 의인의 기도를 기다리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6절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표현했는지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하여라.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라.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라. 그러면 초점이 너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분의 은혜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죄)이 들지 않도록…” 이 생각과 중심을 기준으로 두고, 그러면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골방”이란 표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라.”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 자리에 있어라”는 표현이 가슴에 참 와 닿습니다.

기도하도록 생각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한적한 곳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그 자리에서 원하시는 기도(간구)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결국 언약백성을…, 이 땅에 보내진 한 영혼을 구원하시도록 일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참 사랑이 누구로부터(!) 의인 한사람의 기도로부터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그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이끄는 축복의 자리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부디, 사람의 소리에 유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에 유혹되면, 기도자의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5절, 6절, 7절, 앞에 “기도할 때에” 이렇게 세 번씩이나 기도의 생각과 몸과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5절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외식하는 자의 특징은, 5절에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 외식하는 자입니다.

즉, 마귀의 속성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자입니다.

이들의 상급은 없습니다. 5절 후반부를 보면,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기도는 거짓으로, 포장하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6절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골방이 어떤 곳입니까? 유혹이 들지 않는 곳,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골방입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이 왜(!) 골방으로 나를 오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기도 자에게 은밀한 비밀을 알려 주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눴던 은밀한 대화를 누구에게나 쉽게 입을 열어 나누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영적인 세계는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내 자리가 어딘지(!) 그 자리도 함부로 알려주지 마십시오.

집안이든, 산이든, 자동차든, 어디든…, 꾸준히 하나님과 독대하던 그 자리를 거룩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과 나의 생명을 이어주는 자리입니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 그리고 그 곳에서 기도하는 모든 간구들…,

6절 후반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진짜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을 때에, 여러분의 모든 호흡(심령)까지라도 다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7절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이방인과 같이 ‘정신 나간 사람과 같이’ 그리고 중언부언하지 말라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지 말라, 무의미하게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지루하게 재잘거리지 말라, 등…'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도라는 것도 없이(!) 적에게 무장해제하겠다.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은, 성경에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마태복음 6장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것은 31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땅의 것만 구하고 있는 입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이 구하는 것은, 이 땅에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 즉, 귀신에게 구하기 위하여 입을 열고 있는 것이고, 썩어져 없어지는 기도밖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방인처럼 땅의 것들만 생각하고 쫓아가다 보면, 결국 롯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 가운데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포커스는 언약백성들에게 있기 때문에, 당장 지금의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의 언약백성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그 영혼은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요즘 들어, 시대가 급격하게 흐르다보니 누군가(!) 하나님의 자리에서 막무가내로 하나님의 기준이 되어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한 사람이 내 뱉은 작은 말 하나가, 주님을 믿는 어떤(!) 작은 자 하나에게 그만 실족하게 했다면…, 이 영혼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세상이 교회를 두고, 왜(!) 화가 났습니까?

그 원인은 누군가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다 세상에 화가 있도다.” 쌓이고 쌓여서 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부메랑처럼 심은 대로 화도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아멘” 다음으로 말씀하시는 대목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에서 “너희가”는 믿음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누구를 먼저 가리키고 있습니까? 믿는 “너희가”를 먼저 지명하며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지금까지 ‘용서’와 ‘사랑’이라고 선포하며 왔습니다.

용서의 반대말은 ‘미움’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입니다.

세상이 왜(!) 화가 났습니까? 그리고 그 화가 왜(!) 교회로 왔습니까?

용서와 사랑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한 영혼을 위해…, 누군가에게 기도를 명령하는 것은 용서와 사랑이 다시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수요영성예배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의 말씀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로 일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 교만한 자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유다서 1:17~21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맡은 바 거룩한 그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성령으로 감동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랑하는 내 자녀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예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에 더욱 더 전진하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20.8.16 주일설교

글, 김병일 목사

축복성교회 담임

교회정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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