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 김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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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 김병일 목사

김병일 0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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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은,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본문 : 아가서 8장 6~7절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개역개정>


6.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7.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 잡지 못합니다. 남자가 자기 집 재산을 다 바친다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웃음거리만 되고 말겠지요. <새번역>



우리는 방금, 참 하나님의 고결한 사랑의 정의를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이 사랑이란 단어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무한하신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 만큼(나의 한계) 해 보십시오.

이 사랑이 태초부터 전해져 왔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는 사랑이란 글자 수 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아가서는 전체 8장에서 54번을…, 두 번째 시편는 전체 150편에서 49번을…, 세 번째 요한복음은 전체 21장에서 39번을…, 네 번째 요한일서는 전체 5장에서 30번을…,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신명기는 전체 34장에서 24번순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가서, 신약에서는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세상이 크게 보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맘에 받아들이면 천국이 크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내 사랑하는 자녀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잘해 주시는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가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아름다운 노래(1:1)입니다.

아가서는 “하나님” 이란 단어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가서의 핵심은 ‘사랑’과 동시에, ‘결혼’입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분당, 어느 교회를 지나다보면 교회 벽면에 이렇게 적힌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사람이면 한결같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할 때, ‘사랑’을 시작하게 되지요.

모든 사랑은, 순결하게 시작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순결은 그래서, 순수한 사랑을 완성하는 비결이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동기가, 불순한 것이라면 음란하게 시작된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한번쯤 깊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찾아온 사랑이 순결한 사랑인지, 아니면 불순한 사랑인지 말입니다.


마가복음 10: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역으로 해서 다시 표현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지 않은 것은 결국, 나누어 질 수도 있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순결한 마음이 되도록 준비하셔야 합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래서 결론은,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책임지는 자리인데, 십자가의 사랑으로만이 지키게 하는 그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내 임의로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도 결혼도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옆에, 나를 책임지는 사랑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누구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이 설교를 듣고 보는 모두에게 오직 한분이신 나의 신랑 그리고 나의 모든 것 되시는 나의 사랑되시는 예수님에게 모든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복음 3:22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신 구세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여러분, 여기서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신랑의 신부를 이 땅에서 다시 데려가기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신부를 다시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여기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고 말씀하시는지(!)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7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잠언 10:22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전도전서 8:1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로마서 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고린도전서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여러분, 사랑은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생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사랑 덕분에 오늘도 나는 숨쉬고 있고, 오늘도 나는 꿈 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agape)라고 합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내 욕심이 없는 희생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 안에는 놀라운 보화(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셔서 신부에게…, 교회의 머리(엡5:23)로 오셔서 교회에게 직접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31-33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32절에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의 본질은 결혼(한 육체)에서 시작하며, 그 시작은 서로의 책임에서 첫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결혼을 하면, 이 땅 가운데 주님의 교회(가정교회) 하나 개척하는 것입니다.

이 순결하고 거룩한 비밀의 시작은 바로, 결혼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가장 고결하기 때문에 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결혼은 음란과 분열이 없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랑은 세상 가운데 가장 위대합니다.

그 어떤 수식어로도 이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 제도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만이 신부(한 육체)가 가장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나의 전부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만 합니다.

그 어디에도 이 사랑을 대신할 다른 사랑도, 다른 신랑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사랑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한 육체) 너무나 미련합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생명)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시편 7: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신랑을 버렸는데, 어디에서 진짜 신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의 신랑을 거부하면, 신부의 운명은 바로 자기(우상)가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8: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고린도전서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신부여, 진짜 신랑에게로 다시 돌아 오십시오.

신부는 신랑의 손을 꽉 잡고 함께 걸을 때,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 됩니다.


詩, 내 손을 잡고 오늘을 나와 함께 기쁘게 걷자.


나의 신부여! 함께 오늘의 기쁨은 맛보고, 함께 어려움은 인내하자꾸나.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모든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 눈여겨보아라.

나는 변함없는 너의 사랑이며, 인도자란다. 

네 앞에 펼쳐진 여정의 모든 구석구석들, 네가 천국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걸 다 안단다.


나의 신부여!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따라 걸어야 할지 선택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곧 길이기 때문에 내 곁에 머물기로 결정한 너는, 곧 내 길을 따라 같이 걷는 너란다.

네 생각의 중심을 내게 두면, 나의 오늘이 너를 세심하게 인도하는 걸 함께 볼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하지 마라.

항상 너는 내 임재를 즐거워하고, 나와 함께 보조를 맞춰 걷는 일에만 집중하자꾸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 사랑하는 신부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 묵상하고 있는 가운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믿음’이 무엇인지 아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임마누엘”이란다.


임마누엘(Immanuel)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여기서 ‘계시다’는 ‘있다’의 높임말입니다. 즉, 임마누엘은 그 사실이 내게(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있는 신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며,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함께(임마누엘) 동행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에녹(Enoch)의 뜻은 ‘바친다.’입니다.


창세기 5:21-24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4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아버지 하나님은 신랑의 신부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내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신랑을 사랑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부에게 이 믿음이 오면, 오늘도 임마누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됩니다.


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보면, 에녹은 65세 이전까지(창5:21) 하나님과 그리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65세 때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비로소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의 차이를 보면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에녹은 65세를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보다 이후의 수명이 4.6배 이상 늘었습니다.

분명 이때 에녹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만들어 주셔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전의 삶보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삶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NIV 성경에서 보면, 아들들과 딸들(창5:22)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에녹이 이후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는 건 이전보다 삶의 여러 가지 질적인 면에서 더 많이 풍요로워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 므두셀라(Methuselah)를 보십시오.

이 므두셀라는 성경에 나타났던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969세)입니다.

바로 에녹이 낳은 자식들중, 므두셀라가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누구든지 에녹처럼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놀라우신 그 비밀과 함께 사는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 완전하신 신랑의 사랑 안에서 다 받아 누리며, 그리하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높여드리며 가장 멋지게,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요한1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을 사랑 안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신부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랑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두려움을 받아들이겠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그것은 외도이며, 불순한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받아들이게 되면, 세상 풍속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리고 사랑과 멀어지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들게도 합니다.


여러분, 영과 육 사이에는 ‘혼’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떨어졌던 이 원죄 때문에 얼마나 ‘혼’에 미혹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동물도, 사람도 이 ‘혼’이 있어 감정들을 느낍니다.

동물은 죽으면 혼과 함께 소멸되지만, 사람은 반드시 ‘혼’의 결과에 따라 심판대에 섭니다.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은 아들(신랑)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입은 자는 사랑 안에서 밖으로 더이상 외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두려움을 느끼며 사는 형벌이, 나의 마지막 선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6절에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새 번역으로 보면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누구를 내 마음에 그리고 내 팔에 새기라는 것입니까?

참 사랑이신 나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중심에 예수님의 사랑만 있어야 합니다.

두 마음은 아직도 외도를 하겠다는 불신한 마음(태도)입니다.

불신을 갖고 있으면, 천국을 볼 수 없습니다.


6절에 예수님의 “사랑은 여호와의 불과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불은, 거룩한 성령으로 신부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 불로 신랑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신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불을 신부의 마음과 몸에 새긴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훔치지 못하도록 하는 성령(신랑)의 인치심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사랑)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7절에 “많은 물도”, “홍수라도”,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라도 그 사랑은 바꾸지 않으며, 사람의 생각대로 그 사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멸시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복음은 사랑의 목소리입니다.”입니다.

나는 그 분에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아가 2:8-10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를 내 마음에서 가슴 벅차듯 듣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이 맑아야 합니다.

맑은 감정에서,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10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신랑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실 때, 신부라면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신랑에게 오른손을 한번 내밀어 보십시오.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그렇게 손을 내밀어 신랑의 손을 꽉 잡으시는 겁니다.

절대 임마누엘에서 벗어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20.9.20 주일 설교문

글, 김병일 목사

축복성교회 담임

교회정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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