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시작부터 나의 왕이십니다 - 김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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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시작부터 나의 왕이십니다 - 김병일 목사

김병일 0 1014


제목 : 하나님은 시작부터 나의 왕이십니다.

본문 : 시편 74:12~17


12.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14.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15.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

16.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17.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시편 74편의 말씀은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해서 마스길이란 말의 의미로 보면, 교육적인 메시지와 반성적인 메시지 그리고 또 하나 지혜를 더하여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다소 본문의 말씀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말씀이 하나님의 속량 즉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 오는지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깊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편 47:7을 먼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니,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여라. (새번역)


이 말씀을 마음에서 생각하며, 오늘 본문의 말씀 첫 구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74편 12절입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할렐루야~!


마음에서 믿고 있습니까? 인정하며 따르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내 중심에서 크게 외치며 고백하는 선포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예로부터”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볼 때 처음이란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작의 앞면인 것이죠.


사람이 무엇을 믿게 되었을 때 그 범위가 어디에서라고 말한다면, 시간과 공간에서 얻어지는 지식적 깨달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모든 지식을 다 갖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오늘 하루도 생명을 생각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짧은 내 인생에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지금부터 다시 내일을 바라보는 소망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작은 지구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지구촌 안에서 우리들이 꿈꿀 수 있는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구촌 삶에서 벗어나 영원토록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천국일 것입니다.

이 한 가지 깨달음만으로, 우리는 내 몸과 영혼을 위해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의 말씀은 지혜의 시(詩)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이라 하면, 아브라함 다음으로 다윗일 것입니다.


그 비밀이 크기 때문에, 신약의 첫 구절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로 시작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편 47편 7절에,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여라.”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여라. 어떻게?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여라. 이분에게 말입니다.


그래서 이분에게 드리는 모든 예배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는 우리가 그것도 특별한 공간에서 드리는 내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인 것이지(!) 꼭, 건물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대적 상황들을 보면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잘 분별하며 정성껏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것은 참으로 복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받으시는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19 (13~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이것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드리는 그곳이 재물을 사고파는 장소가(건물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들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심은 어디에 갔는지(!) 찾아볼 수는 없고…, 그 건물에, 그 장소에, 그 위치에서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돈(악)들이 오고가는 장사 소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절) 하시며,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더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예수님의 언약 성취를 그 장소에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필요 없는 성전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필요 없는 성전들…, 모든 가식적인 성전들을 다 허무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24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25절) 우리의 마음 속속들이 다 아시는 예수님, 우리는 그분을 속일 수 없습니다.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치는 것은, 그 마음에 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무당의 말도 계속해서 듣다보면 멸망하는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점 보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반응하는 속사람을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건물에 집착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떠난 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받으시는 장소를 찾아 움직이십시오. 그곳이 어디인지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그곳에 가면, 꼴을 먹이는 목자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가식적인 내 성전을 허물어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내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성전을 다시 짖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허물고, 새로운 성전으로 세우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배합시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니지만, 12절의 앞 절 1~11절을 보면 “어찌하여”란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여기서 한번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여기서 두 번째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1절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여기서도 나왔습니다.


‘어찌하여’는 ‘무엇 때문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구체적인 이유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속량(구속)에서조차 기르시는 양들을 버릴 수 있는 단 말입니까?


시편 74편 3절부터 10절까지를 보면,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3절) 원수들이 성소에 들어와 모든 악을 행하였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원수가 이 공간에서 모든 악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들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4절) 큰 소리로 떠들며 예배 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자들의 중심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자들이 얼마나 무섭게 달려드느냐 하면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5절) 큰 나무를 벨 수 있는 정도의 도끼라면 쉽게 맞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도끼로 대적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6절)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7절) 이렇듯, 점점 맞설 수 없는 위기의 상황까지 압박하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통 이러한 위기의 상황까지 오게 되면, 믿음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마지막 상황까지 밀어붙이는 대적들은 이제 끝을 보려고 합니다.

8절입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반드시 원수들은 그들의 목표대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둑의 최종목표는 멸망입니다. 원수들, 대적들의 목표가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점점 찾아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세요. 답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답이 있는 것입니까?


12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아멘. 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답이 있는 것입니다.

이분께 소리를 외치며 깨우셔야 합니다. 이분에게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시편 74편 13절에서 17절까지 보겠습니다.

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14.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15.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

16.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17.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주께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다 주께서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이 장면은 출애굽 사건의 회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430년 동안 종살이했던 기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430년 만에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때를 위해 모세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모세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냄’입니다.

홍해에서 백성들을 건져낸 사건과 일치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 준비하신 시점은 애굽 종살이 350년입니다.

35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규하는 소리와 눈물을 보셔서 이 땅에 모세를 보내셨고, 그로부터 80년을 하나님은 차근차근 준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을 쓰시기 위해 반드시 준비하십니다.

누구는 120년, 누구는 100년, 누구는 40년 이렇게 모든 인생은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준비된 자를 통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기다리며 단련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도,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준비해야 합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세상의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준비하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먼 훗날 그때가 되면, 그 날을 회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간과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다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 모든 것이 새롭게 전개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깨우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30년 동안 기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절규하듯, 큰 소리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의 양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꿈과 소원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둠의 그림자만 내게 달라붙게 됩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 온지 15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남과 북이 분단 된지 70년이 넘었습니다.

아직도 더 흘려야 할 눈물이 있어야 한다면,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준비하신 것처럼 이 땅 가운데서도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음을 믿으며 예배해야 합니다.


이 한 사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희생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목소리를 내며 희생해야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전방에서 싸우는 그 사람을 변호하며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후방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희생해야 합니다.

이로써, 모든 희생들이 선을 만들도록 하여 결국 악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9절에,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이러해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희생해야 합니다.


11절에,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이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소망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74편 18~20절처럼 모든 아픔과 억압들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18.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20.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이처럼, 쌓이고 쌓인 기도의 재물이 머지않아 늦은 비와 이른 비가 되어 축복의 봄비(단비)로 우리에게 촉촉하게 적셔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21절의 말씀처럼, 그때가 되면 학대 받은 자나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 모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며 영광 올려 드릴 것입니다.


이런 날을 학수고대한다면, 2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여 일어나” 하고 깨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23절의 말씀처럼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즉,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시옵소서.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이 말씀으로 결론하겠습니다.


신명기 8:2~6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왜! 내게 이러한 상황을 주셨을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는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진 동일한 조건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마치 수능시험 보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5절과 6절의 말씀처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아멘.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시작부터 나의 왕이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시작부터 왕이셨던 주님께서 모든 구속을 마치는 그날까지 왕으로써 경외해야 할 것을 똑 부러지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여러분, 우리는 평생 기억하며 변치 않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경외할 것을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0.11.29 주일 설교문

글, 김병일  목사

축복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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