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같이가요, 같이해요 함께가요 - 김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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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같이가요, 같이해요 함께가요 - 김병일 목사

김병일 0 847


제목 : 함께해요 같이가요, 같이해요 함께가요

본문 : 마태복음 12:30-32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여러분, 우리교회 예배당 벽면에 이렇게 걸려있는 문구가 있지요. 오고가며 자주 보셨을 겁니다.

우리 한번 따라합니다. “함께해요 같이가요, 같이해요 함께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고가며 이 문구를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나요? 어떨 땐(!) 무겁게 다가왔겠지만…, 또 어떨 땐(!)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매일매일 그날에 따라 기분과 감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는 기쁜데, 누구는 슬프고… 누구는 억울한데, 누구는 만족합니다.


여러분, 사람이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들로 나와 옆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힘들다고 해서 관계마다 끊어 버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의 기대치는 점점(!) 더 이상 힘들어 질 수밖에 없는 결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요?

미련한 생각 버리시기 바랍니다.


혼자 사는 것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흙으로 똑같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곤 각자 잘 살도록 설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텅 빈 마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블레이즈 파스칼(1623-1662)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마음에는 하나님 모양의 공백이 있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혼자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은 더 이상 간섭받지 않아서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악된 세상이… 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를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요?

점점 하나님 앞에서 불결해 지는 모습으로 텅 빈 마음만 채워갈 것입니다.


이미 부부였다가, 각방을 쓰는 사람들…, 따로 사는 사람들…, 밤이고 낮이고 생각이 드는 건 무엇일까요? 점점 하나님 앞에서 불결해 지는 마음뿐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리고 결혼하였으면,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사람에게 아직도 내 힘이 있다! 이것은, 충분히 곁눈질하는 갈등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입니다.

처음부터 한 몸이 되었다면, 끝나는 날까지 한 몸인 것입니다.

젊을 때는 부부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차츰차츰 부부가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떳떳하지 못한 내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앞 구절로 가보면 24절에, “귀신의 왕 바알세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앞 장으로 가보면 10장 25절에,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했습니다.

바알세불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귀신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구절은, 하물며 그 집안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우리말성경)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악한 존재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다른 번역에서는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하겠느냐?(공동번역) 이렇게까지 아주 심하게…, 모든 가족들에게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알세불은 구약에서 ‘바알세붑’(왕하1:2)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말로 ‘브엘세블’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 안에 ‘바알세불’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브엘세블의 뜻이 ‘주거의 주(lord of the mansion)’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집 주인의 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쉽게 말해서 이런 것입니다.

집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지 못하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섬기고 있는 집안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진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집안에 있는 모든 가족들 또한 바알세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주인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그리하면 너와(너를)” 그래서 하나님은 그중에 단 한사람부터 먼저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영혼부터 말입니다.

이 한사람이 집안에 있는 모든 가족들을 대신해 먼저 총대를 멘 것입니다. 그러니, 바알세불의 공격이 얼마나 강하게 오겠습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목적이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짧은 인생으로 마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온 인류보다 길게… 더 길게 장수하며 사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33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사셨던 예수님, 물론 예수님보다 일찍 이 땅을 떠난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예수님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든 사람의 수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과 바알세불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직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전체를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편에 서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며, 바알세불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바알세불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 갈래 현실 속에서, 어떤 쪽의 사명자로 사실 것입니까? 매순간,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며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다음으로 나오는 구절을 보면 33절에,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이렇게 말씀 하셨고요. 그 다음으로 35절을 보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아주 명확하게…, 그 이유와 결과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인생이 얼마큼 되는지(!)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비율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묻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많습니까? 아니면 살아야 할 세월이 많을 것 같습니까? 과거는 확실히 말하지만, 미래는 추측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을 보겠습니다.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36절의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이렇게 풀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 어떠한 말이든지 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든지 간에…, 결국은 심판대에서 모두 다(!) 해명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호흡이 있을 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을 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을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오직 기회는, 지금입니다.

이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충만하게 받을 수 있는 지금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통해, 앞으로 주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30절의 말씀을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이렇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직적인 일대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네 주인을 뚜렷하게 선택하라. 그리고 준비하라. 이런 말입니다.


그렇다면, 후반부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수평적인 일대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와 함께 일을 하자. 네 사명을 충성이 감당하라. 이런 말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말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아니하는 자” 이 표현의 말씀입니다. 아니하는 자는 결국, 누구의 사주를 받고 종이 되겠다는 말입니까?


아니 난(!) 그쪽도 아닌데…, 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류 전체가운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인으로…, 주님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바알세불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을 할지라도…, 이미 바알세불과 깊은 관계 안에서 사는 함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늪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히 그분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무조건 용서를 구하십시오.

엉덩이가 짓물러도…, 끈기 있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분에게 자비와 긍휼을 구하십시오.

벼랑 끝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한분, 유일한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바알세불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 것인지…, 백과 흑처럼 선택해야 합니다.

희석된 마음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따라 축복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믿음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다함께 31-32절을 보겠습니다.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자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또 누구든지” 한번 더 다짐하는 자에게 이르노니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로…, 내 뱉은 말로…, 무심코 내 뱉은 말도…, 무익한 말도…, 성령님을 모독하거나 성령님을 거역하면 현세와 내세 모두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뼈 때리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30절 전반부는 31절을, 그리고 30절 후반부는 32절과 직접적인 연결성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최근 들어 계속해서 제가 설교 중에서 “말(소리)”에 대하여 줄곧 선포해 왔습니다.



야고보서 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들을 가려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축복과 저주사이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들을 가려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왜요?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온전한 순종은 온전한 제어에서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3:3절의 말씀을 다른 두 번역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말은 입에 재갈을 물려야 고분고분해집니다. 그래야 그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습니다. (공동번역)

우리가 말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그 온몸을 끌고간다. (바른성경)


여러분, 말들에 재갈을 물리는 이유가 더 명확해 졌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거룩하게 잘 보존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대화하려는 가운데 순간 입을 막으시는 경험을 합니다.

성령님의 9가지 열매가운데,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재갈과 절제,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28절)”만을 생각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함께(30절)” 하는 모든 자들 또한 같은 목적과 같은 목표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빛은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빛납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어둡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어두운 이때를 위해, 빛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미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출구를 향해 힘차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이제까지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주인으로 믿고 따르겠습니다.

성령 하나님,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함께, 남은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잘 해 주십니다.




2020.12.13 주일설교

글, 김병일 목사

축복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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