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세상의 소리들: 예수? 누구래? / '예수'는 있다 / 전보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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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세상의 소리들: 예수? 누구래? / '예수'는 있다 / 전보은 지음

교회정보넷 0 72

01 세상의 소리들: 예수? 누구래?

‘예수’는 2,000년의 시간을 따라 곳곳에 전해졌다. ‘예수’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시간¹)이 시작되었고, ‘예수’가 없어지면서 새로운 가치관²)이 형성되었다. ‘예수’를 위하여 그리스어(Greece語)가 세계 공용어(公用語)가 되고, ‘예수’를 위하여 모든 길이 로마(Roma)로 통하였었다. 그리고 그 길은 땅 끝까지.. 모든 족속(族屬)에게 전하여지도록 되어 있다.³)

그래서 이 땅에도 ‘예수’가 전해졌고, 이제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예수’가 없는 곳이 없다. 오디오(audio)나 비디오(video)에 ‘예수’가 넘쳐나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예수’를 보고, 듣지 못한 사람은 없다.

1) A.D. : [(라틴어) Anno Domini(=in the year of our Lord)] 그리스도(‘예수’) 기원서기(西紀)

2)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규범(規範)]

3) 마태복음 24:14


13쪽

그러나 ‘예수’에 대한 소리들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있긴 있어?”… 서해(西海) 어느 낙도민(落島民)은 6.25사변을 몰랐단다. ‘예수’ 모른다고 굳이 나무랄 것은 없지만.. 뭐 그렇게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도 아닌 것 같다. 그 낙도민(落島民)들도 이제는 6.25사변을 알게 된 것처럼 그들도 마침내는 ‘예수’를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정든 고향이 있고, 또 그곳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조국광복(祖國光復)과 함께 나의 부친(父親)께서 터를 잡고 교회를 세운 이래.. 서너 차례 리모델링(remodeling)을 하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로 다듬어져 왔다.

그 교회가 세워질 때 나는 모친(母親)의 태내(胎內)에 있었고, 태어나자 유아세례(幼兒洗禮)를 받았으며, 세월을 따라 교회 담장 안팎을 누비면서 잘 자랐다.

그때만 해도 나는 ‘예수? 누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기? 무엇?’을 생각함이 없이 숨 쉬며 사는 것처럼 ‘예수? 누구?’를 생각함이 없이 교회 담장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참 잘 자랐다.

시골 도량의 종이배처럼 아름답기만 했던 나의 삶이 격랑(激浪)에 휘말리게 된 것은 6.25사변의 여풍(餘風) 탓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 피난 왔다가 돌아가는 친척의 손에 이끌려 여섯 살에 천(千) 리(里) 길인 서울 유학(留學)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나의 학습능력은 대단(?)해서 타(他)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른바 일류학교를 진학하면서 나는 잘 공부했다.

초등학교 상급반이 되면서 이른바 ‘위인전’ 중에서 특별히 ‘성인


14쪽

(聖人)’으로 분류된 ‘예수’를 알게 되었고, 중학교에 들면서 ‘예수? 누구?’라는 종교학(?)적 분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예수’는 선지자[인간]인가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인가?…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실존철학(實存哲學)에 심취(心醉)해 있었고, 마침내 ‘종교’의 허울(?)을 깨뜨리고 철학적 기치를 높이 들었다.

니체(F. W. Nietzsche, 1844-1900)의 ‘신(神)은 죽었다’는 나의 학창시절의 최후 선언이었다.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내가 유학(?)을 위하여 터 잡은 곳은 ‘예수’가 없는 곳이었다. 나는 서서히 ‘예수’와 이탈되고 있었으며, ‘예수’에 시비(是非)를 걸기 시작했고, 마침내 ‘예수’를 때리치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때려치워버린 그 과정을 따라 나의 성장 환경이 피폐해지고, 학습 성적이 곤두박질을 쳤다.

초등학교 상급반이 되면서 성장 환경이 피폐해지기 시작했고, 중학교에서 학습 성적의 선두를 빼앗겼으며, 고등학교에 들면서 (성적이) 급전직하(急轉直下) 후미(後尾)로 추락하였던 것이다.

동굴 속의 벽화처럼 태고적으로부터 정해져 있는 것 같던 내 삶의 초상화는 ‘초혼(招魂)’의 이름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일류대학 – 사법시험(司法試驗) – 검·판사(檢·判事)…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들이 되었다. 그때에는 쓰나미(tsunami)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휩싸여 정신을 가누지 못했지만 이제 돌이켜 보면 신기하고 이상하다.


15쪽

아하, ‘예수? 누구래?’… 이 소리는 세상에서 불리는 소리요, 하나님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서는 나서는 안되는 소리구나… 이제 나에게 ‘예수? 누구래?’는 두려운 말이며, 이에 대한 답(答)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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