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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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고]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고] 

시편 65:4 

화요찬양기도회 26.9.8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https://youtu.be/GS5DrPWf4gk


■■ 설교정리 ■■


□ 설교의 핵심 논지를 살리면서 시편 65편 4절을 중심 본문으로 재구성하고, 관련 성경구절과 역사적 배경을 보강했음. 

□ 특히 원설교의 “복 있는 자 = 윤리를 잘 행해서 복을 받는 사람”이라는 관점에 대한 비판과, “하나님께 택함 받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 이라는 중심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정리했음.


부제 :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1.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은 무엇인가


1) 세상이 생각하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은 다르다

① 사람은 누구나 복을 원한다. 돈, 건강, 권력, 명예, 좋은 집, 안정된 삶을 복이라고 생각한다. 

②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인간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③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죽고 싶지 않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④ 이것은 단순한 본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영원을 바라보도록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2) 전도서가 말하는 인간의 본질

ㆍ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①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②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영원을 생각한다. 

③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④ 그러나 육체의 수명을 아무리 연장해도 죄와 죽음의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다. 

⑤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복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3) 인간의 죽음은 창조의 본래 목적이 아니었다

①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죄와 죽음 가운데 살도록 창조하지 않았다. 

②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죽음이 인간에게 임했다. 

③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④ 그러므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문제다. 

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복은 죄의 용서와 영생이다.



2. 시편 65편 4절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


1) 첫 번째 복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것이다 : “주께서 택하시고”

① 시편 65편 4절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찾아갔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② “주께서 택하시고”라고 말씀한다. 

③ 구원의 출발점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이 있다. 

④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2) 두 번째 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것이다 :  “가까이 오게 하사”

① 하나님께 택함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②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가까이 부르신다. 

③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구원의 은혜다. 

④ 에베소서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⑤ 그러므로 복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더 주셨느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가까워졌느냐에 있다.


3) 세 번째 복은 주님의 집에 거하는 것이다 :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

① 시편에서 하나님의 집과 뜰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예배받으시는 장소를 의미한다. 

② 다윗 시대에는 예루살렘으로 언약궤가 옮겨진 뒤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가 더욱 중심화되었다. 

③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교회 건물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④ 오늘날에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삶으로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⑤ 고린도전서 3:16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3. 시편 65편의 역사적 배경


1) 시편 65편은 예배와 감사의 시다

① 시편 65편의 표제에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② 전통적으로 다윗에게 연결되는 시편이며, 예배와 감사의 성격이 강하다. 

③ 1~4절은 하나님께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집에서 복을 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④ 5~8절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민족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노래한다. 

⑤ 9~13절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땅을 풍성하게 하시며 곡식을 자라게 하시는 모습을 노래한다. 


2) 농경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의 배경

① 고대 이스라엘은 농업에 크게 의존하는 사회였다. 

②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으면 곡식과 목축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③ 그래서 비와 풍성한 수확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연결되어 있었다. 

④ 시편 65편 9~13절의 “땅을 돌보심”, “물을 대심”, “곡식을 주심”, “풍성함”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농경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⑤ 이 때문에 시편 65편은 수확에 대한 감사와 예배의 상황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3) 다윗 시대의 예배적 배경

①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삼하 5~6장). 

②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세워 찬양과 예배를 조직했다(대상 15~16장). 

③ 당시에는 솔로몬 성전이 아직 세워지기 전이므로 오늘날 의미의 예루살렘 성전보다는 성막과 언약궤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임재 장소라는 배경을 고려하는 것이 정확하다. 

④ 그러므로 “주의 뜰”, “주의 집”, “주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예배받으시는 장소에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을 강조한다. 

⑤ 학자들은 시편 65편을 풍성한 비와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찬양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정확한 작곡 시기와 특정 사건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4. 참된 복은 세상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1)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① 시편 기자가 말하는 만족의 근원은 돈이나 권력이나 세상의 성공이 아니다. 

②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을 얻은 사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경험한다. 

④ 반대로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도 하나님을 잃으면 영혼은 만족하지 못한다. 

⑤ 그러므로 신앙의 질문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는가?”가 되어야 한다.


2) 세상의 영광은 일시적이다

① 인간의 인생은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② 시편 90:10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③ 건강했던 몸도 늙고, 아름다움도 사라지고, 재산도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 

④ 죽음을 경험한 가족들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더 배려하지 못했던 것, 사랑한다는 말을 더 하지 못했던 것이다. 

⑤ 그러므로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에서 얼마나 소유했느냐보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느냐에 있다.



5.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1)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

① 사역자는 목회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② 교회를 청소하는 일도 사역이 될 수 있다. 

③ 식사를 준비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일도 사역이 될 수 있다. 

④ 물질로 교회를 섬기는 것도 사역이다. 

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것도 사역이다. 

⑥ 성도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고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는 것도 사역이다. 

⑦ 예수님 안에서는 작아 보이는 섬김도 결코 헛되지 않다.


2) 작은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된다

① 교회에서 특별한 직분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명이 없는 것이 아니다. 

②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안아주고, “잘 지냈느냐”고 물어주는 것 자체가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다. 

③ 하나님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 

④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맡겨진 자리에서 얼마나 충성했느냐다. 

⑤ 고린도전서 15:58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6. 예수님께 부름받은 사람은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1) 베드로와 안드레의 부르심

ㆍ마태복음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① 베드로와 안드레는 당시 사회에서 특별한 학문적 명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②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 직업과 삶의 자리를 찾아가셨다. 

③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셨다. 

④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느냐였다. 

⑤ 하나님은 오늘도 각 사람의 자리에서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드러내도록 부르신다.



7. 복을 윤리로만 해석하면 복음이 약화된다


1) 착하게 사는 것 자체가 복음은 아니다

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 

② 사랑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③ 그러나 그것들이 구원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④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는 메시지는 복음이 아니다. 

⑤ 성경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근거로 제시한다. 

⑥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 그렇다고 윤리와 선행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① 구원받기 위해 선행하는 것과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은 다르다. 

②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다. 

③ 에베소서 2:10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④ 따라서 올바른 설교는 “착하게 살아야 구원받는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셨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가 되어야 한다.



8. 산상수훈의 팔복도 예수님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ㆍ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① 팔복은 단순히 인간에게 “착하게 살아라”라고 윤리 강의를 하는 내용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② 산상수훈 전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떤 사람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③ 마태복음에서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제시된다. 

④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에 속한 사람의 정체성을 선포하셨다. 


2) 윤리보다 먼저 복음이 있다

①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을 단순히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도덕적 교훈으로만 만들면 본문의 복음적 의미가 약해진다. 

② 인간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중요하다. 

③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품성을 개선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④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열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 

⑤ 그러므로 설교의 중심은 인간의 노력보다 예수님과 십자가와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한다.



9. 인간의 윤리와 복음은 구별해야 한다


1) 역사적으로 윤리적 가르침은 다양한 문화에 존재했다

① 공자는 기원전 551~479년에 살았으며 춘추시대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올바른 질서를 고민했다. 

② 공자의 가르침은 인(仁), 예(禮), 인간의 자기수양과 사회적 책임 등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③ 이후 유교 전통은 동아시아의 정치·사회·교육과 윤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④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라”, “남을 배려하라”, “정직하게 살아라”와 같은 윤리적 가르침 자체는 기독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⑤ 불교나 유교를 비롯한 여러 사상에서도 인간의 도덕적 삶에 대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2) 복음의 독특성은 인간의 도덕성이 아니다

① 기독교 복음의 중심은 인간이 착한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다. 

② 죄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복음의 중심이다.

③ 인간은 스스로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④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⑤ 그러므로 기독교 설교가 단순한 도덕 강의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10. 결국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1) 하나님께 택함받은 사람

①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다. 

② 구원은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사람

① 죄로 하나님과 멀어졌던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②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복이다.


3) 주님의 집에 거하는 사람

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② 교회라는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4) 주님으로 만족하는 사람

① 세상의 조건이 만족의 근거가 아니다. 

② 하나님 자신이 가장 큰 복이다. 

③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5)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① 목회자만 사역자가 아니다. 

②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와 사명이 있다. 

③ 작은 섬김도 예수님 안에서는 결코 작지 않다.


6) 영생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

① 이 땅의 인생은 풀과 꽃처럼 지나간다. 

② 이사야 40:6~8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③ 그러므로 세상의 성공을 인생의 최종 목적에 두어서는 안 된다. 

④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11. 결론 — 하나님이 보시는 진짜 복


1) 복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①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에서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가?”로 바꾸어야 한다.② “얼마나 성공했는가?”보다 “예수님 안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③ “얼마나 인정받았는가?”보다 “하나님께 충성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④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보다 “영생을 얻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2) 시편 65편 4절의 복은 관계의 복이다

① 하나님께 택함받은 복이다. 

②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이다. 

③ 주님의 집에 거하는 복이다. 

④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는 복이다. 

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복이다. 

⑥ 마침내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는 복이다.


3) 최종적인 복은 예수님 자신이다

① 돈이 나의 복이 아니다. 

② 건강이 나의 궁극적인 복이 아니다. 

③ 명예와 권력도 나의 궁극적인 복이 아니다. 

④ 교회에서 받은 직분 자체가 나의 복도 아니다. 

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예수님과 함께 살며,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⑥ 그러므로 시편 65편 4절은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한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결국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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