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보는가?, 듣는가?, 아는가?]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보는가?, 듣는가?, 아는가?]
부제: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이 다 알 수 없다
전도서 8:16~17
수요찬양예배
■■ 설교정리 ■■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 말씀의 핵심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1.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행사를 다 볼 수 없다
1)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 뒤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다
①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진다.
② 달이 차고 기울며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③ 계절이 바뀌고 여름에는 비가 내리며 겨울에는 추위와 눈이 찾아온다.
④ 인간은 이런 현상을 자연의 질서라고 부르지만, 성경은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가 있음을 가르친다.
⑤ 문제는 하나님의 역사가 눈에 직접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육의 눈과 믿음의 눈은 다르다
① 육의 눈은 눈앞에 나타난 것만 본다.
② 믿음의 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을 통해 바라본다.
③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 11:1).
④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⑤ 고린도후서 5장 7절도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한다.
3) 인간의 지식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① 인간은 우주를 탐사하고 로켓과 인공위성을 하늘로 쏘아 올릴 수 있다.
②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발전해도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완전히 측량할 수는 없다.
③ 개미가 인간의 생각과 문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도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해할 수 없다.
④ 이사야 55장 8~9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높다고 말씀한다.
⑤ 시편 145편 3절은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라고 선언한다.
2.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1)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① 인간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②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③ 그러나 내가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④ 유럽에 가보지 않았다고 유럽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2)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다
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나타내셨다.
②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구원에 필요한 진리를 알도록 계시하셨다.
③ 신명기 29장 29절은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다”고 말씀한다.
④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감추신 영역을 억지로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타내신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⑤ 로마서 11장 33절도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고백한다.
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한 성경 지식이 아니다
①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한다고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은 아니다.
②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③ 부모의 키와 옷차림과 생활습관을 설명하는 것과 부모의 마음을 깊이 아는 것은 다르다.
④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매다.
⑥ 호세아 4장 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⑦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관계적 지식이다.
3.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행사를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지나고 나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① 현재 진행 중인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②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③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④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하나님이 그 사건을 통해 선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⑤ 로마서 8장 28절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의 근거를 제시한다.
2)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①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출애굽, 광야생활, 가나안 정착, 왕국의 흥망, 포로생활, 귀환 등의 사건이 있었다.
② 당시 사람들은 사건의 전체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③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해 보면 그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어 가셨음을 알 수 있다.
④ 특히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지나 예수님에게서 성취된다.
⑤ 갈라디아서 4장 4절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라고 말씀한다.
⑥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표와 다르다.
4. 하나님의 행사를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이유
1)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①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② 피조물은 창조주의 모든 뜻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③ 욥기 11장 7절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라고 질문한다.
④ 전도서 3장 11절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 수 없음을 보여준다.
⑤ 따라서 신앙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 뒤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2) 인간의 미래를 완전히 알 수 없다
①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② 전도서 8장 7절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그에게 알게 하리요”라고 말씀한다.
③ 인간은 한 치 앞의 일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④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인간이 모두 이해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지혜다.
5.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1) 생명은 인간이 창조할 수 없다
① 인간은 카메라와 자동차와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
② 인간은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을 조합하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③ 그러나 생명의 근원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④ 인간은 생명을 연구할 수 있지만 생명의 창조주가 될 수는 없다.
⑤ 인간 자신의 몸만 보아도 놀라운 창조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2)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창조를 증거한다
① 시편 139편 14절은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라고 고백한다.
②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심장으로 피를 순환시키고, 폐로 호흡하며, 뇌로 생각하는 모든 과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③ 인간의 존재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증거다.
④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6.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 장애가 있다
1)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영의 눈을 가린다
① 세상의 재물과 성공과 욕망은 사람의 영적인 시야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
② 마태복음 13장 22절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한다.
③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④ 돈과 명예와 성공이 삶의 중심이 되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크게 보게 된다.
2) 말씀을 빼앗기는 것도 문제다
①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떨어진 씨를 악한 자가 와서 빼앗는 것으로 설명하셨다(마 13:19).
② 성도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③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④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 이 말씀을 내게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⑤ 시편 119편 18절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7.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에는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1) 인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한다
①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죽은 후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② 세상의 성공과 돈과 명예를 위해 살아가지만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③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④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한다.
2)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한다
①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
②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창조 목적에 맞는 삶이다.
③ 예수님을 믿으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④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다.
⑥ 그러므로 성도의 가장 큰 소망은 세상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8.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보여준다
1) 노아 시대의 역사적·성경적 배경
① 창세기 6장은 노아 시대의 세상이 죄악과 폭력으로 가득했다고 기록한다.
②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③ 방주는 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으로 지어졌다(창 6:15).
④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준비했다.
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고 반복해서 기록한다.
2) 방주의 문은 하나님이 닫으셨다
①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간 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고 기록한다(창 7:16).
② 하나님께서 7일 후 비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7일 후 홍수가 시작되었다(창 7:4, 10~12).
③ 홍수는 40일 동안 계속되었고 물은 150일 동안 땅을 덮었다(창 7:17~24).
④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심판의 현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방주의 문이 닫혀 있었다는 점이다.
3) 노아의 방주와 예수님
①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았다.
② 그러나 노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준비했다.
③ 오늘도 인간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말씀이 주어져 있다.
④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4:37~39).
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세상의 흐름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⑥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⑦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9.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1) 하나님이 감추신 영역이 있다
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알려 주신 것은 아니다.
② 감추어진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③ 신명기 29장 29절은 계시된 것과 감추어진 것을 구별한다.
④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열어 주신 것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⑤ 반대로 하나님이 감추신 영역을 인간의 추측으로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2)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비밀을 모두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①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이해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②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③ 욥은 고난의 이유를 끝까지 모두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췄다.
④ 욥기 42장 5절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한다.
⑤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다.
10. 전도서 8장 16~17절이 주는 핵심 교훈
1) 인간의 지혜를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① 아무리 많이 배워도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② 과학이 발전해도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설명할 수 없다.
③ 지혜자는 자신이 아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④ “내가 다 안다”는 태도는 지혜가 아니라 교만이 될 수 있다.
⑤ 참된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① 인간의 경험은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를 가르친다.
② 성경을 읽을 때 지식을 쌓는 데만 목적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③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④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한다.
⑤ 말씀의 빛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11. 역사적 배경에서 보는 전도서의 메시지
1) 전도서의 저자와 시대에 관한 견해
① 전도서의 히브리어 명칭은 '코헬렛'(Qohelet)이며, ‘회중을 모으는 자’, ‘가르치는 자’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② 전통적으로 전도서 1장 1절의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을 솔로몬으로 이해해 왔다.
③ 전통적 견해에서는 솔로몬이 말년에 자신의 지혜와 부와 성공을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본다.
④ 솔로몬의 통치 시기는 일반적으로 약 B.C. 970~931년으로 이해된다.
⑤ 그러나 현대 성서학에서는 전도서의 언어와 문체 등을 근거로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후대, 특히 페르시아 말기~헬라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 Oxford Research Encyclopedia도 솔로몬 저작설이 현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정확한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2) 전도서가 속한 지혜문학의 특징
① 전도서는 잠언, 욥기와 함께 성경의 지혜문학 전통에 속한다.
② 인간의 지혜와 한계, 죽음, 수고, 부와 성공,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질문한다.
③ 특히 “해 아래”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④ 그러나 전도서의 결론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⑤ 전도서 12장 13~14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결론짓는다.
⑥ 결국 전도서 8장 16~17절의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다 알 수 없다”는 고백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지혜만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실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2. 결론 ―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1)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바라봐야 한다
① 지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②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도 아니다.
③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시야보다 훨씬 크다.
④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지금 당장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2)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신 분은 예수님이다.
②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셨다고 말씀한다.
③ 그러므로 감추어진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려고 하기보다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님을 깊이 바라봐야 한다.
④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붙들고,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한다.
3) 결국 믿음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① “나는 하나님의 모든 일을 알 수 없다.”
②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③ “나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아신다.”
④ “나는 하나님의 길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는다.”
⑤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⑥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을 따라간다.”
⑦ 전도서 8장 17절의 결론은 인간의 무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한 믿음이다.
⑧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사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 안에서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