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도’는 ‘묵상’으로
‘묵도’는 ‘묵상’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 “다같이 묵도(默禱)하심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은 너무나 귀에 익숙하다. 이 말이 아닌 다른 어떤 표현으로 예배의 시작을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통 한국 기독교인들은 묵도를 ‘묵상기도(默想祈禱)’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묵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조용히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도는 일본인들이 신사참배를 할 때나 가정에서 자신들의 신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하는 것을 말한다.
묵도라는 말이 예배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일제강점기 이전,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전통과 예식을 세워나갈 때는 묵도라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1938년 한국 기독교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묵도는 예배의 순서가 됐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예배드리기 전에 일본의 신사(神社)에 먼저 참배하는 묵도를 예배의 순서에 넣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참담한 역사의 산물은 예배의 순서로 굳어지고 정형화됐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묵도가 예배의 한 순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묵상기도와 비슷한 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묵상기도는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상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깨닫는 지적인 노력과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결단이 바탕이 돼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보고 말씀으로 영적·내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것이 묵상기도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묵도하심으로’라는 말의 사용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멘트 없이 예배의 부름을 찬양대의 찬양이나 악기의 연주로 시작하는 교회들도 있다. 하지만 습관에 의해 신사참배의 잔재인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아직 많이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도하심으로’라는 말 대신 성경적인 언어인 ‘묵상’(시 1:2)을 사용하거나 ‘조용히 기도하심으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