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삶은 늘 고생과 고난의 연속입니까? - 이재철 목사
욥기 5장 7절입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나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죄로 타락한) 인간은 고생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은 인간은 고생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인데, 그것은 마치 '불꽃이 위로 올라감과 같다' 여러분 성냥의 불을 붙이든, 촛불에 불을 붙이든 그 초를 밑으로 방향을 바꾸든 어떻게 하든 붙어 있는 불꽃은 반드시 위로 올라가죠.
붙어 있는 불꽃이 아래로 내려가는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이것은 당연한 법칙이거든요. 그 당연한 법칙이거든요.
그 당연한 법칙처럼 모든 인간은 고생하는 것이 당연한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해산하는 것, 열달동안 뱃속에서 품고 있는 것 말할 것도 없고 해산 하는 것, 고생 중에 상고생입니다.
엄마만 고생합니까? 그 태문을 열고 나오는 태아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고생하면서 나옵니다.
그래서 울면서 나오지 않습니까?
평생 먹고 살기 위해서 고생합니다.
결혼해서 평생 자식 키울려고 고생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고생합니다.
그런데 그 고생을 누가 알아줍니까?
자식을 다 키우시고 나니까 자식들이 우리 엄마 아빠 고생한거 다 압니까?
말로는 안다고 하지만 모릅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봉양하는데 나이드신 부모님, 시부모님을 자식이 봉양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부모가 압니까?
모릅니다. 아는 것 같은데 모릅니다.
밖에 나가서 가장이 자존심을 상하고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사표를 열번 쓸까 말까 망설이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내가 모릅니다.
그 가정을 지킬려고 아내가 남모르게 아내가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지 남편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고생 몰라주시면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고생 몰라주시면 고생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시편 90편 10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수고와 고생과 슬픔뿐인 이 인생이 조금 길었으면 좋기라도 하겠는데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이자 철학가인 폴 발레리라고 하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용기를 다해서 생각한데로 살지 아니하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데로 생각할 것이다.
창녀는 창녀식으로 생각합니다.
사기꾼은 사기꾼 식으로 생각합니다.
도둑은 도둑식으로 생각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명분이 있습니다.
다 합리화 시킵니다.
내 살고 싶은데로 살면 사는데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어느날 (심판의) 그 날이 오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서 (믿음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생각하는데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그때에 여러분의 삶 자체가 이 시대를 밝히는 진리의 횃불이 될 것이요,
백년을 내다보는 진리의 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