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길잡이7강 : 성탄과 재림]-1 현명인목사
[마태복음 1:2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베드로후서 3:10-14]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1)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신앙길잡이7강 : 성탄과 재림]-1
본래 12월 25일은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축제일로써 모든 로마 시민들의 휴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뒤에, 모든 국민의 휴일이었던 12월25일을 교회가 성탄절로 수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서 불교의 석가가 태어났다는 사월 초파일을 성탄절로 정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반대로 12월 25일을 석가가 태어난 날로 정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서로 수용할리 없습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는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축제일을 성탄절로 수용했습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그 날을 예수님의 성탄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 어디를 봐도 십자가는 나오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의 형틀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형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로마제국 시대에 처형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이교도의 형틀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세로축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로축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의미 등을 부여해서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수용해 왔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교수대에서 교수형을 당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교회에는 십자가 대신 교수대의 올가미 줄이 걸려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프랑스혁명 시대에 사용하던 단두대 기요틴에서 죽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시나 단두대의 모형이 강단 위에 결려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기요틴 펜던트를 목에다 걸고 다닐 것입니다.
약 이십 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 세속적인 문화, 심하게는 사탄의 문화라고도 표현되는 문화가 기독교 문화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기독교계에서도 세상의 문화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우는 꽤 많습니다. 영화를 ‘봐라’, ‘봐서는 안 된다’. 골프를 ‘해도 된다’,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서로 다는 견해들을 내놓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사람의 몸, 곧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했는데, 오신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때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가리켜 '로고스(logos)'라고 표현했습니다. ‘로고스’는 당시 헬라철학의 ‘만물을 지배하는 이성적인 원리’를 표현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그 로고스를 하나님으로 표현했고, 말씀으로 표현했고,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철학적인 용어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던 것입니다.
12월25일을 성탄일로 기념하는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방교회는 성탄절을 1월 6일에 지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11월에 지킬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3, 4, 5월을 성탄절로 지킬 때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장소마다, 또 사람의 견해와 교회마다 성탄절을 지키는 날이 다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이렇게 보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해 쓰면 기독교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간단한 논리가 적용되는데,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기독교 문화와 비기독교 문화가 본래부터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곧 어떤 문화든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그 문화를 이어가고 기념일을 지켜내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한국 교회가 예배당을 짓는데 기와로 덮으면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 가야금과 거문고를 켜면 예배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흙으로 짓든, 볏단으로 짓든, 기와로 덮든, 또 어떤 악기를 쓰든, 그것이 인간의 윤리, 도덕을 파괴하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독교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십자가를 주렁주렁 매달고, 성경구절을 여러 액자에 넣어서 군데군데 걸어 놓은 기독교 문화행사라고 해도, 그 문화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주최측과 인간 자신을 과시하는 인본주의에서 발발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기독교 문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예수님께서 인류 가운데 오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확이 몇월 며칠에 오셨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12월 25일을,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聖誕節)'로 지키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큰 행사로 지키는 절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탄절은 다른 중요 절기를 있게 한 근원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 없는 부활절도 없고, 성령강림절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성탄절을 속칭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일컫는데, 그리스도의 축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라틴어로는 나타리스(Natalis)라고 하고, 독일에서는 버이나흐트(Weihnacht)라고 하고, 불란서에서는 노엘(Noel)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은 모든 교회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최대의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신나서 들뜬 마음으로 지냅니다. 성탄절을 세속의 날로 즐기는 사람들로 인하여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사고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성탄절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놀고먹고 마시고 취하고 춤추면서 몸과 마음을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 것”처럼 풀어 헤치면서 즐깁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탄절은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고 취하는 날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경배를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계속>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름다운열매맺는 좋은나무교회
<아둘람복음공동체 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