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위한 신앙과 자기를 위한 신앙 - 박진생 목사
주님을 위한 신앙을 가져라 (출32:1-6)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하시는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배경은 출32장 금송아지 사건의 배경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 오늘 본문의 금송아지 사건과
- 솔로몬 왕 때 여로보암이 유다를 배반하고 북이스라엘을 세울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오늘 말씀과 똑같이 고백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 바벨론 포로 시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어 숭배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 우리 신앙에는 어떻게 적용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2가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을 위한 신앙과 자기를 위한 신앙을 분별하라
출32:1 백성이 /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백성이 아론에게 일러 말하되 일어나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데 무슨 나를 위한 신앙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의 증거판을 가지고 더디 내려옴으로 땅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신앙, 자기를 위한 신앙의 하나님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을 잘 알지 못할 때, 인내하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을 위한 신앙을 만들기 쉽다는 교훈을 성경의 거울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해서인가요?
아니에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또한 애굽의 신 송아지를 믿고 있는 거죠.
돈과 재물이 나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평안하게 인도해줄 신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으로 비유했어요.
양들은 주인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자기 길로 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를 잘 말씀해주고 있는 성경이 호세아서이죠.
신부 고멜은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요, 또한 신부 된 교회를 이중적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멜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술을 준다고 하는 다른 남자를 따라갔거든요, 이것이 자기 길을 가는 신앙인 것입니다.
신랑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은 30냥에 자기 길로 가는 죄를 담당시키셨거든요.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호세아서를 보면 그리스도의 진리가 모형과 그림자로 감추어져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
가롯 유다에 대한 예정설과 자유의지론에 대한 논쟁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오늘 말씀 가운데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주님은 아신다고 기록되어 있고,
더 깊은 말씀은 이미 구약에 다윗의 책사 아히도벨을 가롯 유다의 모형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 예정된 그 말씀을 실제로 성취하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가롯 유다의 모형인 이히도벨은 다윗을 주군으로 섬기는 같은 상에서 떡을 먹고 계략을 꾀하는 책사였지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 왕궁의 전세가 압살롬에게 기울어지자 아히도벨도 다윗을 반역하고 압살롬의 책사가 되어 다윗에게 발꿈치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은 잠언서를 기록하면서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반역자인 압살롬과 친밀한 관계를 꾀했던 아히도벨과 같이 반역자와 함께 멸망의 길을 택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씀이니다.
가롯 유다는 결국은 탐욕과 자기 유익 때문에 자기 길로 갔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2) 넘어진 자들을 볼 때 용서와 기도하는 태도로 보라
출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시내산에 율법의 증거판을 가지러 갔던 모세를 기다리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는 모세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넘어지는 성도들을 볼 때 비웃고, 조롱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와 긍휼한 자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14: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민수기 14장은 백성들의 원망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했던 12정탐꾼 중 10명의 정탐꾼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가나안 땅의 환경과 거대한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자.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때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모세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기도의 태도입니다.
마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성만찬을 마지막으로 베푸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는 장면입니다.
같은 상에서 떡을 떼던 친밀한 관계인 제자였던 가롯 유다가 주님을 배반할 것을 주님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배반할 제자의 더러운 발을 씻는 것은 용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길과 자기의 길을 분별하고 더디 이루어지는 것들을 끝까지 인내하고 용서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그런 신앙이 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박진생 목사
성장하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