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완성을 이끄시는 교훈 - 박진생 목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주시리라 (민13:26-35)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하시는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 중 민수기13장은 가나안 땅의 정탐입니다. 14장은 백성들의 원망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정탐꾼들은 백성들과 함께 있는 모세 앞에서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가나안 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계속하여 예언하고 있는 땅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약속을 믿고 신뢰하며 따라가면 되는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약속을 신뢰하는 두 사람 외에는 모두가 신뢰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인 환경과 거대한 거주민들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되었지만 아직 완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갈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고 히11:6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상을 준다는 것은 상을 급수대로 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삯을 준다는 뜻으로 민수기에서 목적지에 들여보내시겠다는 예표의 말씀의 실제인 것입니다.
세상 경쟁 방법과 교회를 잘 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로에게 경쟁을 붙여 열등과 우등을 느끼게 하는 여러 등급의 급수를 붙여 사용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고 적용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1) 두려움을 버려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민13: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10명의 정탐꾼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 거주민과 싸워야 하는데 가나안의 견고하고 큰 환경과 거대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려면 다가오는 거대한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첩첩산중, 사면초가와 같은 환경에 직면할 때 두려움을 갖는다면 주님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보다도 그 환경을 해결하려고 기도하고 그 환경을 피해가려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환경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용사는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께 맡긴다면 환경과 사람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삿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죽고 난 후 여호수아를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나서 마땅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요약하자면 “왕이 없으므로 각기 소견대로 행하였더라.”입니다.
그러나 왕이 없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적들과의 전쟁의 위기가 올 때마다 사사들을 세워서 싸우게 하였습니다. 기드온도 사실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자 소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대적 미디안을 칠 때 나팔을 불며 사람들을 모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많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가 많은 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원 받은 수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라고 극단적으로 해석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의 수에만 의지하는 것은 스스로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라고 자랑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 자들은 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는데 거기서도 다시 백성들을 물가에서 테스트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가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시켰는데 개가 물을 혀로 핥은 것 같아 마시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을 확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도 먹과 마시고 입어야 합니다. 의식주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온전히 그것에 무릎을 꿇지 않고 대적들과의 영적 싸움에 경계할 수 있는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과 또한 믿는 자들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때문에 세상에 온전히 무릎을 꿇습니까? 그것은 말로는 내가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들의 고백과 생활 같이 생활로는 대적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싸움터에서 대적들과 싸울 수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도 돌려보내고 남은 자가 300명이었습니다. 기드온의 300용사,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사들,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들이 여기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둘째 사망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멸망 받을 자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오늘 말씀하는 두려워하는 자들, 영적 전쟁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라갈 수 없는 주님이 택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2) 구원은 건물의 크기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데 있다.
민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미 약속한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10명의 정탐꾼들은 마지막 목적지 까지 갈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장면은 그들이 숫자는 많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이 결코 많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모임,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건물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외적 성장을 위해서 치중해왔다면 이제는 내적 성장을 위해서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많은 수가 모여 있다고 다 구원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호세아 10장은 북이스라엘의 징계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솔로몬 이후 나라가 갈라질 때 남 유다는 베냐민 지파와 함께 2개의 지파가 남았지만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세우고 10개의 지파 즉 많은 지파와, 많은 용사들을 의지했던 나라입니다. 그들은 좋은 열매를 얻고자 하였지만 자기 길, 자기 생각, 용사의 많음을 의지했기 때문에 가짓 열매를 먹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무엘하24:1에서는 다윗의 인구조사가 나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 이후에 나라가 평정되고 나라가 강해지고 삶이 풍성해지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생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인구를 부하인 요압 장군에게 지시하여 조사했는데 대상21:5에서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시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으로 하는 신앙생활, 자기가 정해 놓고 자기 길로 가는 신앙을 멈춰야 할 것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고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연상법: 815 해방된 말씀)
성도가 많다고 교회가 크다고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 건물이 작다고 쪼그라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갖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14장의 백성들의 원망은 민13장 가나안 정탐꾼 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환경을 보고 기도는 하되 감정적으로 통곡할 뿐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듣되 세상 금과 은보다, 먹고 마시고 사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가는데 어떤 두려운 환경과 사람 가운데서도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삯으로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오늘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고 어떤 환난 가운데서든지 나아가는 것,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줄 삯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급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또한 아직 받을 상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힘차게 달려 나가는 믿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글, 박진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