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탈진 - 이장우 목사
영적 탈진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듯이 믿음을 지키는 일에도 긴 고난의 터널 속에 갇히게 되면 영적으로 점점 탈진해 가기를 시작합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영적인 진액이 빠져나가면서 탈진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탈진하게 되면 영적 분별력이 떨어지고 인간적인 생각이 그 심령을 침투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의 걸림돌에 부딪히게 되면 넘어지게 되고 실수하게 됩니다.
사울에 의하여 쫓김을 당하며 도피의 삶을 살면서 그래도 믿음으로 잘 버티고 있던 다윗이 10여 년간 지속된 도피생활에 힘들어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정도라면 일반 신앙인 같은 경우는 벌써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왕궁으로 돌아가고 다윗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유다 땅에 머물러 있으려니 사울이 또 자신을 추적하여 잡으러 올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다 땅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의 예측대로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추적하여 잡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도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들어온 초기에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이 역시 아브라함이 가지 말아야 할 땅으로 내려간 실수였습니다.
다윗은 왜 유다 땅에 머물지 않고 이방인의 땅 블레셋으로 도피하는 길을 택하였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블레셋 땅으로 갔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삼상27:1)라고 합니다.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간 것은 육신적인 생각을 때문이었습니다. 이방 우상을 섬기는 블레셋 땅으로 도피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던 지금까지의 신앙이 오랜 도피생활의 고달픔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탈진하게 되었고 영적인 탈진이 되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육신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결정할 때와 달리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판단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림으로 내면에 변화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어떤 행동을 하고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블레셋의 침공을 받았다고 도움을 요청할 때도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먼저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그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그런 다윗의 마음에 유다 땅에 머물러 있다가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게 될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자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이 스며들어온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노리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나 우리나 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강한 것 같지만 약합니다. 바울은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합니다.
다윗의 영적 탈진과 약함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 붙어서 그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생수를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행동과 결정을 내릴 때는 육신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할 때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