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은혜, 무엇이 우선인가!?
[찰스 스펄전 설교집 중, 1915년 10월 7일 발행]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엡 2:8)
오늘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 구원의 근원인 '하나님의 은혜'를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에 범죄한 인간이 용서를 받고, 회심을 하고, 정결케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 안에 구원받을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하심, 자비로우심,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샘의 근원에 머물러 계십시오.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은지요! 누가 능히 그 깊이를 측량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도 그렇지만 이 은혜 역시 무한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이름(God)을 보십시오. 선하심(good)을 줄인 내용이 아닙니까!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선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인간이 진멸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자비가 무궁'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와서 용서를 받는 것은 '여호와의 긍휼이 무궁'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믿음의 근원인 것은 잊은 채 믿음이 구원의 수단인 것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한 결과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결과입니다!
은혜는 믿음과 구원의 처음과 마지막 동인(動因)입니다. 믿음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용하는 기계의 중요한 부속으로서 중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만,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 말이 마치 천사장의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믿음은 통로와 수로입니다. 은혜는 샘이요 물줄기입니다. 자비라는 물줄기는 믿음이라는 수로를 통해 흘러서 인간의 목마름을 해결합니다. 이 통로가 망가지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마에는 멋진 수로가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대개 부서지고 망가져서 시내로 물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물을 잘 전달하려면 수로가 잘 관리되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도 진실하고 건전하여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믿음은 우리 영혼에 자비를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은 통로와 수로이지 샘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한, 믿음을 우리 구원의 근원과 별개로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예수를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을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믿음이 의지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은혜는 기관차이고, 믿음은 기관차와 화물칸을 연결하는 체인입니다. 영혼을 실은 화물칸은 체인을 통해 강력한 힘으로 끌어주는 기관차와 연결됩니다. 믿음의 의는 믿음의 도덕적 탁월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 안의 화평은 우리 자신의 믿음을 묵상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께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만지는 그분의 겉옷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때 화평이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게 됩니다. 이 통로를 잘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처 : 행복신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