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삶
야베스의 삶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9~10)
본문은 환난을 벗어나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야베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야베스의 이름에는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야베스가 어떤 불행을 가진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래 유대 나라에서는 아버지가 자녀의 이름을 지어여줍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이 어머니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으로 볼 때 야베스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또는 유복자로 태어나서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체적인 장애나 심한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며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가난이 그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지역을 넓혀달라는 복을 구함으로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베스는 어떻게 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요?
첫째. 야베스는 삶의 지역을 넓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삶이 지역을 넓히는 사람이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는 사람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탓하거나 그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기를 내어서 삶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이나 육체적인 조건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악조건을 초월해서 나가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삶의 지역을 넗힘으로서 성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만약 요셉이 주어진 환경에 굴복했다면 그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그 인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경을 초월해서 자신의 지역을 넓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며 애굽 전체가 요셉의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도 자신의 삶의 지역을 넓힌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싸우고 있을 때 불레셋 장군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점점 사기가 떨어져 패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막대기 하나와 물맷돌 몇 개를 가지고 골리앗 장수 앞에 섰습니다. 골리앗이 코웃음을 치면서 “넌 개를 잡으려고 왔느냐”고 다윗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그 물맷돌이 골리앗의 미간에 정통으로 맞아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자에 불과했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나감으로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그 인생의 지역을 넓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이 때로는 야베스와 같은 환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만이 삶의 지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자신의 삶의 지역을 확장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야베스는 형제보다 귀중한 여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 많은 재산가나 권력을 거머 쥔 사람이 아닙니다. 진실로 성공한 사람은 남에게 귀중한 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하게 여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남이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 교회가 인정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명에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명예롭게 살도록 복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 도덕적으로 순결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 명예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 부지런히 땀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귀중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길 때에 그가 귀중하게 여김을 받고 교회를 존귀하게 여길 때에 그가 귀중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야베스는 형제보다 귀중히 여김을 받았으며 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야베스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야베스는 본래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저 너머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멀리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현재가 아니라 영원한 미래의 세계까지를 바라보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기 조카 롯이 기름진 소돔과 고모라 땅을 차지하겠다고 할 때에 아브라함은 선선히 양보하였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 앞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스스로 담장을 쌓고 그 안에 앉아서 멀리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창조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참된 평화를 모릅니다. 자신이 쌓은 이기주의의 담장 안에서 결코 그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과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뜻을 펴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야요, 안목입니다. 모든 인생이 때로는 야베스와 같은 운명일 수 있습니다. 야베스처럼 불행한 환경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삶의 지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넷째. 야베스는 하나님께 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재능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그 인생은 헛된 삶일 뿐입니다. 야베스는 기도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병을 고쳐 주소서, 재물을 주소서,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야베스는 ‘주님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을 벗어나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라고 마치 주기도문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한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듣는 모든 여러분들도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심으로 삶의 지역을 넓혀주시고, 귀중히 여김을 받으며, 환난을 벗어나 근심을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