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던 그 당시 사람들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깊은 교제와 나눔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혹시 그런 대상이 있다면 그것도 겨우 가족이라는 한계에 불과했습니다.
모두가 나 살기에 바빴고 나의 행복을 지키기에도 힘에 겨웠습니다. 모두 그렇게 살다보니 인생은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매여 슬퍼하고, 고통당하며, 현실에 허덕이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파격적이고 새로운 인생관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사는 일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댓가나 조건 없이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감정으로 예수님을 주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또 그러한 인생에 대해 한 번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거침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까요?
아마도 기쁨이나 감사한 마음보다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먼저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왜 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생각으로 살아온 삶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면서 인생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초청의 메시지를 던지셨습니다.
그 초청하시는 말씀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어떤 사람을 뜻할까요!
처음 말씀하시는 이 부름은 초청의 대상을 제한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과 특별한 교제를 나눌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말은 ‘피로에 지쳐 쓰러져 있는’ 상태를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인생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자존감마저 무너져버려서 인생에 대해 아무런 기대조차 없는 포기된 상태에 있는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고 누군가를 원망하기에도 지쳐버린 삶! 깊은 연민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무조건 감사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나 주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인생에 대해 철저히 포기한 그러면서도 간절한 도움을 주님께 기대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이 초청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다 내게로 오라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주님은 다 내게로 오라는 말을 통해서 인생에 지친 자들에게 최후의 선택권을 주십니다. 진정 새로운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그 기회를 지금 당장 주겠다는 초청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든지 모두 다 돕겠다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에 지쳐서 피곤할 때면 새로운 돌파구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학대하고 혐오하면서 살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 순간의 쾌락을 위한 환락을 추구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순간 순간을 마지못해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따뜻한 음성 앞에서 새로운 감격과 위로를 받고 변화된 인생관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으며 엄숙하고 진지한 새로운 인생의 출발에 대한 선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사랑을 가슴 벅차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땅히 자신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부족함을 습관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주님에게 나아가는 것을 피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그 겸손함이 자신을 채우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두 손들고 주님의 사랑을 감격해 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주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나아가는 결단입니다.
셋째.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평안과 안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면 결코 우리의 부족함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회복을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결단을 해 본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쉼의 의미와 축복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부정과 비난으로 가득차고 불신과 미움으로 자신의 마음이 파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주님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인생이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름다운 결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그 어려움을 통해서 선을 이룰 수 있습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이라는 죄입니다. 주님의 도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다가선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절대 겸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만 살아갈 때 진정한 쉼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까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주님께 드리고 그 분의 지배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주님으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의 이 말씀에 동의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승리하세요.
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