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을 이긴 성도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실상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은 없다. 이토록 죽음이란 모든 사람들이 반가워 하는 것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 두려워 하며 죽기를 무서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기에 그러하다.
죽음의 세력(권세)을 잡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자면 바로 '사단' 즉 '마귀'이다(히2:14) 어느 사람이든 이 마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는 자가 '마귀'라고 하니.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그 마귀의 권세아래 놓이는 것을 좋아 할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불신자들)이 안타깝게도 마귀의 권세아래 놓여 죽음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성경은 분명히 증언한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을 꺼라고...(요1서4:18). 장차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즉 둘째 사망인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놀랍게도 그들은 다름아닌 두려워 했던 자들이라고 <요한계시록21장8절>이 증언한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위의 말씀 가운데 인간의 어떤 의지적인 변화의 촉구를 요하는 차원에서 저러한 유형의 자들을 나열 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저와 같은 자들은 정녕 불의한 자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에게 오늘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내용은 이런 말씀이시다. <고린도전서 6장11절>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유독 싫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 처음 대면한 사람에게 꼭 먼저 하신 말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셨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고,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온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는 모세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해야 하는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하지 말것을 말씀 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나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인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구원'이시자 곧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요한1서4장16-18절>이 이를 이렇게 증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예수)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렇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두려워 하는 자들이 아니다. 두려워 하는 자들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날때에 언제나 '구원'으로 다가오시고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이시기에 그분은 두려워 하지 말 것을 먼저 말씀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신자들이 갖는 공포감이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고전6:11) 하나님의 백성들이 느낄 그런 불안한 감정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도 친히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성도의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을 취한 믿음이다. 그런데 그분의 그 부활과 생명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 성도가 죽음의 두려움을 갖는 다는 것은 곧 '불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자가 되었 것만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성도의 숨쉬는 호흡은 끊어지는 호흡이 아니다. 잠시 잠자는 호흡만 있을 뿐이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니...(50절)"하며, 성도에게 비밀을 말해준다. 그 비밀은 다름 아닌,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51절)"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는 이렇게 사망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
그렇다. 성도는 '두려움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죽음의 사슬에서 놓여진 자들'이다. '사망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자들', 그들이 바로 '성도'인 것이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다. 마귀가 자기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자들은 죄 아래 있는 자들 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인해 자기 죄 아래 그대로 놓여진 자들, 바로 이런 죄인들에게만 마귀는 사망 권세를 갖고 휘두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잠언 14장26-27절>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성도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사망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2장14-15절>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로마서8장2절>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한다.
마귀는 더 이상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생명을 얻은 성도에게 사망 따위로 참소하거나 송사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는 더 이상 마귀의 농간은 물론, 사망의 공포놀이에 놀아 나는 그런 겁쟁이들이 아니다. 성도를 위하여 죽으 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시다. 그분은 지금 살아계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자요 우리(성도)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한 바로 그런 곳이다. <잠언21장21절>에서. "의(하나님의 의)와 인자(그리스도)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 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는 성도는 더 이상 사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영생불멸자' 로 되어 있는 것이다.
글, 김진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