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룻 1:19-22)
본문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직한 고백과 신앙심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을 기대합니다. 그 고통이 설령 자신의 잘못으로 시작되었어도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받아 줄 사람만을 찾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할 때 보통 “다 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아니면 “이럴 때 일수록 무조건 하나님을 믿어야 돼”라고 하거나 때로는 “너의 죄로 인한 고통이니까 빨리 회개해야 돼 방법이 없어” 라고 말합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을 돕는 방법에 대해서 너무나 주관적이고 막연합니다. 서로를 돕고 싶지만 돕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돕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상대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상대를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누군가를 도우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고통으로부터 치유 받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본문에는 이러한 고통의 문제로 부터 벗어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바로 나오미라는 여인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첫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 합니다 (룻1:20)
나오미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했습니다. 그녀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가진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들마저 차례대로 잃게 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된 두 며느리와 살게 된 나오미는 기가막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오직 세상적인 풍요만을 바라보고 모압 땅으로 갔던 자신의 행동이 가장 커다란 문제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픔과 비통에 잠긴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이 흉년의 기근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큰 며느리 ‘룻’과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재혼하라는 시어머니의 강권을 만류하고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과거의 신앙의 동반자들과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고 칭하라” “마라”는 “고통, 슬픔”이라는 말입니다. 나오미가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나오미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자신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룻기의 결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룻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며 나오미와 룻의 행복한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비통한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을 원한다면 자신의 수치와 무거운 죄를 드러내는 아픔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아픔과 그 고통의 이유를 미화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감추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난의 이유를 신앙으로 고백해야 합니다(룻1:20)
나오미는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거나 환경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흉년을 맞아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다고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문제를 신앙의 힘으로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고통이 하나님의 책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적인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나오미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징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징계인지 아니면 극복해야 할 사단의 공격인지를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나오미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죄로부터 비롯된 하나님의 징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고백이며 깨달음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하나님께 분명히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룻1:22)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백과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앙의 상식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나오미의 인생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은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홀로 된 며느리를 대동하고 유다 베들레헴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나오미가 마땅히 있어야 할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결단은 모압을 향해서 떠날 때 보다 더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지 뉘우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은 바로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그 물음의 뜻이 원래있어야 할 곳을 떠났다는 책망이며 동시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오미의 선택이 바로 뉘우치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 풍성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비통한 위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아픔의 순간에 본문의 나오미와 같은 결단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인생에도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잃어버렸던 풍성함이 회복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의 풍요함의 혜택을 입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넉넉하게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주위의 관심과 도움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녀의 인생이 굶주림과 생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오미의 인생의 변화는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옴으로서 가능했습니다. 그녀의 회개와 결단으로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녀가 겪은 고통에 비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자리에 그녀의 이름이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못을 범하고 깨닫지 못할 때 때로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립니다. 부모는 매를 맞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마음 속의 눈물을 삼키면서 그 작고 여린 종아리를 때립니다. 아픈 매를 맞은 아이들은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징계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반석같이 섬으로서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