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려면

a Christian column

교회가 교회를 돕는다!

홈 > 교회뉴스 > 기독칼럼 > 조성호 목사
기독칼럼

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906.png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507.png

예수님을 따르려면

Loading the player...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8:18-22)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지 그냥 되는 일은 없습니다.모든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따르는 일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복된 삶을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한 서기관이 나와서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따른다는 말은 제자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지망생인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렇게 거절하신 것은 그 서기관의 마음 중심에 있는 기복신앙을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또 그런 기적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서기관도 예수님을 따라서 자신에게도 예수님과 같은 기적의 능력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오직 자신의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서기관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병도 고치고 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예수 믿으면 영혼이 구원받고이런 마음이 기독교를 기복신앙으로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이 세상과 내세라는 전체의 삶을 통해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시몬 베드로는 벳세다 출신으로서 가버나움에서 어부로 살았습니다. 그는 상당히 잘 살던 부자였습니다. 어부로서는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배도 있고, 함께 일하는 일꾼들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따른 이후에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물질적으로는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다가온 것은 오히려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는 순교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헛된 죽음이라고 오해를 할 만큼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베드로의 죽음을 헛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천국의 문들은 진주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진주로 만들어진 문마다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시몬 베드로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기록된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만 본다면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 후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다 잃었고 생명까지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모든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부자도 됩니다. 구원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라고 하는 곳에 국한해서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베드로의 인생도 그렇고 바울도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나 기독교를 기복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단순하게 기복적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을 얻고 세상에서 출세를 해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만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전혀 주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서 풍성하게 주시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필요하며 그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온당한 생각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지는 이 서기관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 문맥으로 볼 때 결국 이 서기관은 결단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21절부터 22절에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의 다른 제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물론 이 사람은 열두 제자 그룹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초청을 하신 것입니다. 앞에서 본 젊은 서기관과는 반대로 주님이 먼저 초청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들은 제자는 자신은 부친을 장사한 후에 따라가겠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부모님이 고령이었을 때 자식은 그 부모의 곁을 떠나면 안 됩니다. 멀리 떠났다가 자칫 장례식을 치루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부모의 곁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병든 부모님이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문화적 관습으로 보아서 이 청년의 부모는 아직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령이거나 병들어 누워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의 풍속으로는 참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는 제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이 그만큼 시급했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제자에게 말씀하신 것은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먼저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보면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에서 죽은 자들이란 말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어버린 자들에게 장례를 맡기고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서기관은 너무 서둘렀고, 두 번째 청년은 소명을 받고도 너무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변명을 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과 생명에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궁색한 변명을 했습니다. 그 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이 가장 시급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결단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어떤 각오입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0)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는 가난도 각오하고, 손해도 각오하고, 욕먹는 것도 각오하고,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심지어 머리 둘 집마저도 없을 것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명 없이는 절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청년은 주님의 사명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 비로소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생명의 만나를 듣는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또한 사명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로 주님을 따르려면 무엇보다도 주님의 일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에 먼저 우선권을 두면 안 됩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세상적인 쾌락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먼저 주님을 따르는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가치의 우선에 먼저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로서 스승 되신 예수님과 같이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믿고 세상에서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하기를 꿈꾸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3664095115_imYLvMHc_6c0d4987d6e986cf2cd5f22de9dc2df728b65abf.jpg 

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

0 Comments
포토 제목
a37c65bdfe62a649b27013ff27da007b_1674969923_1732.png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