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 반석이신 주 (고린도전서 10:13) - 박정제 목사
흔들리는 나, 반석이신 주 (고린도전서 10:13)
오늘은 이 찬양의 가사가 내 마음의 고백이 된다.
‘피난처인 예수여 세상 물결 험할 때 크신 은혜 베푸사 나를 숨겨주소서.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이제 12월을 맞이한 지금 이 고백이 꼭 나의 고백이 된다. 진실로 주님의 인도하심이 간절히 소망된다. 인생은 주님 은혜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2021년 인간이 아무리 백신을 만들어도 새로 발생하는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에 엄청난 예산을 들인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에 진실로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이런 고백이 저절로 고백된다.
어제저녁 늦게 부산에 있는 처형이 아내를 도와주신다고 달려오셨다. 가족의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아내가 팔목과 발목의 부상으로 힘겨워할 때 하루 두 번씩 전화해 심방 해주면서 외로움을 만져주신 처형이 부산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직접 도와주시겠다고 오신 것이다. 정말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여러 사람을 통해 듬뿍 받고 있다. 누가 그런다. 돈 빼고 우리 집은 다 있다고 ~ 정답이다. 이것이 주님의 길을 걷는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어제 말씀의 결론으로 던져진 말씀이다. 그러나 어제 은혜의 변질이란 부분이 너무도 감동되어 결론을 빼고 묵상을 마쳤다. 오늘은 그 결론의 말씀을 한 절이지만 깊이 묵상하려고 한다.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주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이 바로 은혜의 변질로 찾아온 신앙의 흔들림의 현장에 주어진 결론적 말씀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묵상한다. 먼저 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다시 읽는다. ‘여러분의 앞길에 닥치는 시험과 유혹은 다른 사람들이 직면해야 했던 시험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한계 이상으로 내밀리지 않게 하시며 그 시험을 이기도록 언제나 곁에 계시며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름 최선을 경주하는 사람들이 하는 오해가 있다. 나는 잘하고 있으니 시련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능력이 많으니 기도많이 했으니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오해다.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런 너희도 유혹과 시험앞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믿음이 있지만, 또 많은 은혜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은혜가 변질되어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느냐고 포기해 버리는 일이 벌어져서 바울은 이 말씀을 하는 것이다.
누구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목회사관학교 생도들이 지난 주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안 흔들리지요. 갈등이 없으시지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저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날마다 갈등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그런 갈등과 흔들림이 있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 은혜가 있기에 나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 말씀에 순종하여 나갈 뿐이라고~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오직 흔들리지 않는 분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밖에 없다. 은혜의 참된 표지판은 바로 누구도 흔들리는 인생인 죄인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고, 주님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아멘.
은혜는 알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너무도 어이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며 넘어지지만, 그분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피할 길을 내시며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멘.
나는 지금 너무도 소중한 내려가는 길을 간다. 초행길이다 보니 나는 많은 실수로 시험을 만나고 흔들리며 넘어진다. 그러나 나는 은혜를 변질시켜 공로로 착각도 하지만 그럼에도 은혜를 통해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이 너무도 당연하며, 그럼에도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미쁘신 사랑과 능력과 지혜로 피할 길을 얻게 하시고 능히 감당하게 하실 주님이 함께하는 것을 말이다.
부산에서부터 처형이 달려와 아내를 도와주시는데 나의 주님이 어디서든 달려와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사단은 은혜의 변질로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너에게 어떻게 그래 ~ 라고 자신을 붙들라고 유혹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늘 그렇게 흔들리는 존재로 은혜 없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에 불과한 자이다. 그러나 이런 나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의 흔들림도 갈등도 없이 나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 달려와 주시는 주님이 계시다. 그래서 부족한 나를 인정하며 오늘도 갈등과 시험에 주저앉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힘차게 일어난다. 아자. 아자. 아자.
주님 감사드립니다. 60의 나이에 이제는 실수 없는 완전함으로 서고 싶지만, 늘 부족함 덩어리로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넘어지며, 여전히 문제를 만들고 있어 부끄럽지만, 이 종을 변함없는 사랑과 능력으로 찾아와 주시고 품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그저 그 은혜 아래 감격하며 엎드립니다. 주님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님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이 종을 오늘도 붙드시고 감당케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