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를 간구(기도)하는 성도
<잠언 15장29절>에서 하나님은 말씀 하시기를 "여호와는 악인은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고 말씀 하셨다. 여기서 '의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이겠는가? 성경이 가리키는 의인은 자기 영역 밖에서 구원을 이룬 자들을 의인이라고 증거한다. 다시말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룬 자들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을 성경에서는 '의인'이라고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죄인된 상태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삼으시기를 자신이 의로우시듯, 모두 의인된 자들만 자녀로 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인된 자녀들은 언제적부터 의인이었던가? <에베소서1장4절과5절>에서는 이렇게 기록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렇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는 자들이자, 기도하는 자들인 것이다. 찬송으로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금단 향로에 향을 피우는 자들이고, 또 그 향을 하나님이 흠향토록 하는 자들, 이들을 일컬어서 성경은 증언하기를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입은 의인' 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충만하신 사랑을 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 할 때에는 물론, 말에든, 일을 할 때에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풍성한 사랑과 은총은 물론, 성령 충만한 역사로 통해 나타내는 은사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이 되도록 해 두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좋은 모든 것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도 '기도' 없이는 얻지 못한다. 간혹 기도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곤경과 필요를 일일이 고하지 않더라도 먼저 아시고 다 해결해 주신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도(자녀)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하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해결하심의 모든 것들이 전달 되는 통로'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칼빈'은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비를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전력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일곱번이나 종을 보내어 비의 징조가 있는가 엿보도록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의심에서의 발로가 아니라, 그의 신앙이 잠자거나 마비 상태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항상 깨어 있고자 한 신앙이었으며, 그의 소원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아뢰고자 한 의도였었다고 해석했다.
그렇다.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이거나 어떤 바램의 소원이 성치되기를 빌기 이전의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나눔이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지향하는 표징이자 하나님께로 상승하는 성도의 마음이 기도로 표출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성도의 기도 정신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서 우리의 모든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적합한 상태를 유지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쉬지말고 해야 할(살전5:17) '기도' 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성도의 기도는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성도라 하여도 연약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늘 죄에게 노출되고 죄에 빠지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 하여도 일상 속에서 다반사적으로 일어 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성도는 어떤 상항 속에서도 기도로 거룩해져야 하며, 그 거룩해 지는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만이 더러운 성도의 모든 죄악을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성도로서 특별히 주의 해야 하는 것은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 보려는 행위이거나 자신의 영광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야심은 금물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추호의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신뢰하지 말고, 전적인 자기 부인(否認)의 겸허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의 기도가 가장 먼저 솔직한 고백으로 우선되어 올려져야 하고, 항상 자신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없으면 안되는 연약한 존재임을 토로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기도하는 성도는 자신이 드린 기도에 대해 확신을 갖는 정신(믿음)이 필요하다. <야고보서 5장16절>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고 하였다. 성도란 이미 그리스도로인하여 의인이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성도는 기도로 거룩해 지고,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꼭 유념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성도의 기도는 '주의 길', 즉 '주의 뜻'을 간구하는 것이 기도이며, '주의 은총', 즉 '주의 의'를 구하는 것이 기도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의 기도를 한 예로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내시는데 모세는 그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역활을 하게 된다. 백성이 하나님께 배신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에 모세의 중보 기도는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길(뜻)과 은총(의)에 언제나 호소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출애굽기33장13절>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 뿐 만이 아니라, <민수기14장19절>도 보면 그는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정의'와 '성실'을 호소하는 기도를 했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옵소서..."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이 한번 택하신 백성을 애굽에서도 구원 하셨듯, 이 광야에서 저지른 죄악 가운데서도 결코 그 백성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기도이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는 구속사적인 기도로 해석해 보면 훗날의 스데반 집사의 기도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신 그 기도를 미리 보여준 예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자녀)가 된 자들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100% 의지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아들과 아버지로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드려지는 기도는 혹 그 아들이 죄를 범했다 하여도 결코 아버지는 그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죄를 토로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성도(자녀)로서의 특권이다. 그렇다고 죄를 함부러 지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죄를 지 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이 바로 우리 성도(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성도(자녀)라 하여도 자신이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죄를 짖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허항된 바람 따위는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없기 때문이다(전7:20).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더 이상 짖지 않기 위해 기도 할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어떤 죄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은 그 죄악의 수렁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시는 분이심을 믿도록 기도할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시다.
성도가 보유한 '의'는 성도 개인에게서는 도저히 찾아 볼 수도 없고, 만나 볼 수도 없는 '의' 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은 의인이 된 사람인 줄을 알고, 연약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는 죄악 가운데서 가끔은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 마다 늘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자들, 그들이 바로 성도(자녀)인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라고 말하며 믿는 성도, 그들이 하나님의 성도이자, 전도의 문은 열리는 법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죄인이 자력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자가 있겠는가? 죄인된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 존전(尊前)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가 그리스도됨을 알고, 믿는 자들로만 가능한 것이다. 감히 어느 의로운자가 있기에 하나님의 의를 대신 하겠는가? 성경이 증거하는 의인의 부재는 인류의 시작과 종말 속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롬3:10)" 이다. 그 누구도 이 하나님의 의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도(자녀) 가 되는 자는 이 세상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인해 구원을 받은 성도란 그 하나님의 의가 구원 받을 때에만 필요 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도저히 온전치 못한 자임을 아는 믿음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7장23-24절>에서 이렇게 결론 짖는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아멘!
글, 김진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