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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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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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막 15:6-15)


그리스도인들도 가끔은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사건에 대한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는지 막연하게 받아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성 없이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가해자 중에 자신도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런 감동 없이도 그런 막연한 고백들을 잘 합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용서도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살아있는 감동을 느끼기 원한다면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진지한 자세로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군중들이 그토록 왜 흥분했는가? 그리고 군중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그토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군중의 흥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군중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사랑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때로는 원치 않게 기적즐 베푸시면서까지 인간의 아픔과 소외를 돌보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많은 군중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군중을 이용해서 자신의 부나 명예를 채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왜곡된 성직자들과 지도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많은 고통을 감수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은 왜 바리새인들 편에 서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그렇게 열심을 내었을까요?

군중들은 그들을 종교적으로 착취하고 그들을 억압하며 특권을 누리는 종교 지도자들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을 가르치며 실제적으로 사랑을 주셨던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왜 그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잘 짜여진 한편의 각본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추적해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가 얼마나 영악하고 이기적이며 잔인한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잡혀가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 가롯 유다 때문에 팔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먼저 유다를 조종한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 범죄자의 입장으로 빌라도 총독에게 압송됩니다. 인간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정치적인 범죄자로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빌라도 총독과 바리새인들, 또 수많은 군중들도 예수님이 전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가 어떻게 서로 연합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사건의 출발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가롯 유다의 욕망이 그 시기심과 결탁을 하게 됩니다. 또한 군중들의 개인의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 심리와 이기적인 심리가 그들과 결탁합니다. 끝으로 정치적인 위기에 놓여있던 빌라도의 권력이 이것들과 타협을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시기심, 욕망, 물욕, 이기적인 안정, 무지, 권력에 대한 열망. 이러한 죄의 종류들이 다 같이 연합하여 만든 작품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것들과 똑같이 부패한 도덕성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 박는 무서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서 무엇이 그토록 무서운 죄가 되는지를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바리새인들의 시기심이 죄입니다  (막15:10)


예수님의 죽음은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인생에서 절망한 죄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으며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들에게는 진리의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굶주린 자들에게는 기적으로 빵을 주셨으며, 몸이 아픈 자들은 아무런 댓가 없이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자들은 직접 찾아가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런 선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대상은 예수님의 이러한 삶의 모습에 동화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 종교, 정치, 사회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최고의 혜택을 받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이기심과 폭력과 부와 종교적인 위선은 그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의 배후는 바로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시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라는 말의 원어을 보면 “열심”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 열심히 있을 때 자연적으로 상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겨납니다. 성경은 그런 상태를 시기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기심이 무서운 죄를 불러오게 됩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하기로 작당하였습니다.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종교적인 명예를 빼앗아가는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심만으로 예수님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죄악을 감출 수 있는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가 바로 가롯 유다였습니다. 가롯 유다의 또 다른 열심은 예수님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열심당원이었던 유다는 정치적 욕망과 그에 따르는 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정치적인 야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다의 욕구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롯 유다의 불만이 대제사장들에게는 좋은 거래 조건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다에게 은 30을 줌으로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들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해버립니다. 이제 남은 일은 군중들을 선동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둘째. 군중들의 어리석음이 죄입니다. (막15:11)


인류 역사를 보면 군중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군중은 진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동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군중은 안정과 동질감을 찾아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잘 길들여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개혁이나 변화가 어려운 것입니다. 군중은 모험과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감정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관심보다 지금 나에게 어떤 상황이 더 편하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군중의 특징이 바로 죄의 보편성입니다. 구약 시대에 광야를 행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던 근거도 바로 이런 군중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군중의 힘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이러한 군중의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쏠려있던 군중들의 마음을 쉽게 돌아서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이 땅에서 얻어지는 만족보다는 미래적인 내용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은 조급한 심리를 가진 속성으로 미래에 대한 큰 약속보다 지금 주어지는 작은 만족에 매력을 느끼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보다 강도 바라바가 더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보다도 기득권자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대신해서 풀어주는 바라바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욕구가 예수님을 또 다른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군중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을 주었다는 분노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고 갔습니다. 이 군중의 어리석음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빌라도 총독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의 상식으로는 이 군중의 분노와 요구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빌라도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이라는 신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결국 성난 군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셨고 그들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바로 죄였습니다. 이기적인 욕망과 진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함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변화와 약속보다 지금 현실의 만족과 개인의 평안을 꿈꾸는 수많은 이기심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여러가지 죄악된 이유로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시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용서는 바로 이런 죄악된 인간에 대한 용서였습니다. 그 죄를 내가 이기었으니 너희는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라고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을 향한 그 분의 사랑의 선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 이제 내가 너희에게 보여준 그 사랑을 이 세상을 향해서 실천하고,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너희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왜 아직도 주님을 따르는 일을 그토록 망설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그렇게 계산적입니까?  할 수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서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할 형제요, 자매라는 그 사실이, 어떤 감정이나 지식보다 우선 순위에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또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겸손과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여 서로에게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형제와 이웃에게 서로 진실한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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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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