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사명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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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명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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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명을 다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14-15)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닙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죽은 후에도 그 사람의 이름 석자는 남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을 중요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에게 안겨주는 첫 번 째 선물이 "좋은 이름" 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부모들은 "좋은 이름" 짓기에 골몰합니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름은 우선 뜻이 깊어야 합니다. 어감도 좋고 부르기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작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도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짓기 어려운 것이 이름인데 주님은 "귀한 이름"을 우리에게 연거푸 지어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후에 곧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12절에서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름을 또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감히 주님과 같은 이름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감격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 빛은 스스로 밝습니다. 사람의 양심도 빛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마음씨가 밝아야 합니다. 흐릿하거나 구질구질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빛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빛이라고 이름 지어주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빛은 다른 사람을 밝게 비추어 줍니다. 마음이 밝으면 접촉하는 사람의 마음도 밝아 집니다. 마치 덕이 높은 어른과 마주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옷깃이 여며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나(7:36-38), 삭개오같은 사람들의 인생을 보십시오. (19). 오늘 날 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마음 속에 깊이 "파고 드는 빛"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 빛이 있어야만 휘청거리는 이 세상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기우뚱거리는 도덕과 윤리가 제 자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서 빛으로서 무지와 편견을 걷어내고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선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인 교회는 큰 횃불을 이루어서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빛이 있으면 산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의 도시들은 대부분 산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전쟁과 침략이 많았던 시대라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좋은 곳에 동네를 세운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도 산위에 세워졌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공기도 좋고 경관도 좋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멀리까지 자신을 노출합니다. 본문에서 지금 주님이 자리에 앉아서 수많은 군중들을 가르치고 있는 장소는 다볼산입니다. 다볼산은 나사렛에서 동남쪽으로 9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해발 564m의 높은 산입니다. 산 정상에서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산 아래의 도시는 "사페드"라는 곳입니다. 사페드는 해발 200여 미터 높이의 언덕으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 가운데 하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처럼 빛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습니다. ""이란 무엇일까요? 유대인의 집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매우 흔한 곡식의 양을 재는 큰 통입니다. 한 말은 열되의 분량이 되는 곡식을 재는 크기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시골에도 이런 말들이 흔했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감추지 않습니다. 등불은 밝히기 위하여 켜는 것이지 감추기 위하여 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행실을 드러냄으로서 주님의 등불과 같은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등불은 등경 위가 제자리 입니다. 등경 우에 올려 놓아야 집안 모든 사람이 그 불빛 아래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등은 발달하지 못한 천연 그대로의 것이었습니다. 등피도 없이 둥그란 접시 위에 올리브기름을 부어놓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만든 심지로 불을 켰습니다. 촛불도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등불이 그만큼 소중했던 시대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을 말씀하신 것은 빛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역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이 "세상의 부패"를 전제하듯이 "세상의 빛""세상의 어두움"을 전제합니다. 빛은 스스로 자신을 태워야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녹아야 하듯이 빛이 되려면 타야만 합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소금이 되고 빛이 됩니다.

빛은 또한 열을 내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소금이나 빛이 그 자체의 독특성을 상실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소금이 부패한 곳에 있어야 하듯이 빛은 어두운 곳에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에 동화되어서도 안 되고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속하지 말고 오히려 이 세상을 굳건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도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인의 온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파의 장벽을 쌓아 놓고 자기 교회나 지키고 거대한 건물이나 짓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이 전제하신 썩은 세상에서, 어둠의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산골 기도원에 들어가서 제 몸보신을 위한 기도나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세상이 살벌할수록 이 시대를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자기 몸을 소금처럼 녹이고 등불처럼 살라서 세상을 밝히는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신 빛은 자신을 내세우는 허식의 빛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은은한 빛입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큰 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나 같은 무능한 것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나약한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이 세상을 밝게 비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오늘 방송을 듣는 모든 여러분들이 "세상의 빛"으로서의 자신에게 주신 영광스런 이름의 값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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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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