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비움> 다르게 채운다
‘단순한 삶’이란 평범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삶이다. 불필요한 소유와 인간관계를 덜어내 참다운 나를 찾는 것이 단순한 삶의 핵심이다. 그래야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 수 있으며 더 나은, 더 많은 것을 좇는 욕망으로 인한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남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다. 적절한 ‘비움’과 ‘버림’으로 단순한 삶을 찾아야 삶이 행복하다.
비움과 버리기
40대 직장인 J씨의 집 안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발 디딜 곳이 없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과 포장을 뜯지 않은 택배 박스가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옷장엔 태그를 떼지 않은 옷이 10벌 이상이다. 어떤 물건을 버려야 할지 판단을 할 수도 없다. 누가 집에 올까 봐 불안하고 우울하다.
회사 일도 집중이 안 됐다. 계속되는 실수로 직장생활이 난관에 봉착하자 J씨는 얼마 전 전문가의 도움으로 ‘물건 비우기를 통한 치유’를 시작했다. 먼저 유통기한이 지난 것, 똑같은 것이 여러 개 있는 것, 언젠가 쓸 것 같지만 1년 이상 쓰지 않은 것, 손에 들어봤을 때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다른 물건으로 대체해 쓸 수 있는 것, 디지털화할 수 있는 것, 보지 않는 추억의 물건 등을 버렸다. 쓸 만한 물건은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처음엔 버리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었지만 집 안의 물건이 비워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무기력증도 회복됐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깨끗한 공간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삶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주어 일의 능률을 높여주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영성생활에도 도움이 됐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비움과 예수님 마음
예수님은 ‘단순한 삶’을 사셨다. 하나님께 모든 중심을 두셨다. 성경에서 ‘비움’은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7) 여기서 ‘자기를 비워’는 헬라어 ‘케노시스(kenosis)’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뜻한다. 영어 NIV 성경에서는 ‘자신을 무(無)로 만드셨다(made himself nothing)’고 번역됐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오시어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성경에 자기 비움을 실천한 인물들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은 ‘네가 가지고 있고 누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셨을 때 이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물을 버려두었다는 것은 자신의 직업과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관에서 사무를 보고 있던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다. 마태는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눅 5:28)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다’는 것은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모두 포기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단순한 삶은 철저한 ‘자기 비움’에서 비롯됐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만 ‘포기하고 비우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먼저 모든 것을 비우고 포기하셨다. 자기를 비움으로 업신여김을 받을 줄 알면서도 그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자기 비움이다. 우린 삶 속에 어떻게 비움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물질적 비움, 정신적 비움 두 가지로 실천할 수 있다.
비움과 미니멀리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소비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필요한 최소의 것만 소유하고 소비하자는 것이다. 소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이들은 “물건을 과도하게 소유하면 참 자아를 잊게 된다”고 말한다. 소유에 집착하면 정작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건을 적게 소유하는 것이 능사란 얘기는 아니다. 최소한의 소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다. 또 여러 갈래로 나눠진 나의 관심사와 여러 곳으로 분산된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단순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며 의지이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이나가키 에미코는 저서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신없이 사 모았던 가전제품을 모두 처분한 내가 이렇게 편안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돈을 많이 벌어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게 자유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손에 넣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자유는커녕 불안과 불만의 원천일 뿐이다. 무언가를 손에 넣으면 그다음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생기는 법. 목표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란 그런 믿음에서 빠져나오는 것, 즉 ‘없어도 살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더 이상 그 무엇도 갈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비움과 내려놓음
우리의 복잡한 머릿속도 우리의 몸이 머무는 집과 같다. 생각은 뇌에 흔적을 남기며 면역계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부정적이거나 불안한 생각, 남을 멸시하거나 의심하는 생각은 우리 마음을 오염시킨다. 이런 감정들은 우리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망가뜨려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사랑과 행복의 감정이 들어서는 것을 방해한다.
머릿속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상에서 깨어있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고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있고, 필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건강해지고, 집 크기를 늘릴 필요도 없고, 그에 따라 많은 돈을 벌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생각만 남도록 머릿속을 정리하자. 머릿속을 정리한다는 것은 물건을 정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 없는 것은 치워 없앤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물건이 사라지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불필요한 생각을 버리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안다면 그에 따라 생각을 정비할 수 있다. 중년기 이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의 머릿속을 잘 들여다보면 매일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느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소홀해진다. 우린 영원히 변치 않는 데서 행복을 찾고 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나는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놀라운 능력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성을 빼면 생각할 수 없는 듯하다.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은 많지 않다. 사실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지 않다. 사실은 딱 한 가지, 범사에 그분께 순종하는 일이다.”(리처드 포스터 ‘심플라이프’ 중에서)
비움에 하나 더
비우지 못해서… 저장강박증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사진)은 저장강박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화책, 유명인의 신발, 편지, 사진을 비롯해 사람들이 쓰레기로 취급하는 물건도 모조리 모았다. 다양한 물건을 상자에 넣어 타임캡슐이라고 불렀다. 타임캡슐이 집 안에 600개가 넘었으며 5층 건물 전체에 물건을 쌓아둬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던 방은 2개뿐이었다.
저장강박증은 단순히 취미로 물건을 모으는 수집광과는 다르다. 저장강박증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하잘것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려워하고, 어떤 물건을 버릴 것인지 결정을 못 한다. 이렇게 모아둔 물건들이 정리되지 못하고 산더미를 이뤄 집 안의 실제적인 생활공간을 침해하고 이로 인해 집 안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통계적으로 인구의 2∼5%에 나타나는 증상으로 가족과 이웃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안겨줘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저장강박증이 나타나는 이유는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고 저장강박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낭비를 막기 위해’ 또는 ‘모아둔 물건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지 몰라서’ 등이다. 물건들이 모아져 있는 상태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모은다는 대답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동기로 물건을 모으든 간에 물건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보관되지 못한다는 것이 수집가들과의 차이점이다.
국민일보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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