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버리고 믿음으로 살라 - 김진현 목사
제목 : 염려를 버리고 믿음으로 살라
본문 : 마태복음 6:30~34
30. 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오클로스=서민)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아픈 분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같은 서민들이었습니다. 염려와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이런 저런 염려와 걱정거리들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염려와 걱정거리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걱정거리를 가지고 계십니까?
어니 J. 젤리스키라는 작가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이라는 책에서 염려와 걱정거리를 조사해보니 염려와 걱정거리의 40%는 절대로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입니다.
22%는 사소한 고민거리입니다.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입니다. 4%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즉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숨쉬지 말라! 고민과 염려는 10분만 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염려거리를 안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도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 것을 가르치십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주님의 교훈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1.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5번을 강조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1) 염려는 무익하다.
27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어느 누구도 걱정한다고 키가 자라지는 않습니다. 걱정한다고 생명이 연장되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염려는 무익합니다. 염려는 흔들의자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염려는 해로운 것이다.
염려라는 원어의 뜻(메림나오)은 ‘분열하다 나뉘다’, ‘짐승이 물어뜯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분열시킵니다. 염려는 마음을 물어뜯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음의 평안을 물어뜯어 평안이 깨어지고 불안 속에 살게합니다. 염려는 감사와 기쁨을 물어뜯어 감사와 기쁨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게합니다. 염려는 우리 몸을 물어뜯어 병들게 합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항상 염려를 품고 사는 사람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뚝 떨어져 건강이 나빠진다.“ 라고 합니다. 많은 의사들은 신경성 위염이나 두통등의 질병은 모두 스트레스나 염려의 결과라고 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3)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계속 예언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염려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셨습니다.(요14:13-14)
빌4:6-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러분의 염려를 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기를 바랍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기를 축복합니다. 탁구를 칠 때 잘 받아 넘기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문제가 올 때 그 문제를 주님께 넘겨 드리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염려와 불안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요14:27) 주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를 죄와 저주와 질병과 죽음의 염려에서 해방시키고자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염려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고 자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2. 우리의 경제생활에 대한 2가지 믿음
1) 우리는 새들보다 훨씬 귀하다.
마6:26절을 보겠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 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들 중에 염려하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먹을 빵이 없어져갑니다.’ ‘가져온 물이 떨어져 갑니다.’‘옷이 다 헤어져 갑니다’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그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은 씨앗을 심지도 않습니다. 새들은 추수하지도 않습니다.
새들은 창고에 저장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새가 씨앗을 심는 것을 보았습니까? 추수하고 창고에 저장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새들을 다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에 살아가는 조류는 약 1000억 마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먹고 사는지 상상이 잘 안갑니다. 지구촌에 아무리 부자라도 모든 조류를 먹이다가는 며칠 만에 부도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새들을 잘 키우시고 잘 돌보십니다.
우리집에 무화과를 새들이 자주 먹습니다. 우리와 새들이 경쟁하며 무화과를 따먹습니다. 새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새들보다 귀한 너희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오(탄식)~믿음이 작은 자들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손주들이 오면 바닷가를 갑니다. 갈메기는 새우깡을 좋아합니다. 갈메기는 그것을 먹으려고 치열하게 움직입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것은 가끔 줍니다. 그렇다고 갈메기들이 굶어죽습니까? 안주어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들을 다 기르십니다.
하나님은 온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다 기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끔찍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르는 것들을 안주시겠습니까? 오~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믿는 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고 노동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주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들은 날면서 먹이를 낚아채는 것입니다. 참새들이 벌레를 잡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들도 할 수 있는 활동을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십니다.
우리가 게으르고 노동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잠12:27) 우리가 부지런히 일하면 물질은 채워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게으르면 가난해집니다.(잠24:34, 살후3:10)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는 사람들이 다 부지런하게 일합니다. 그런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게 됩니다.
물질의 문제로 힘들고 어렵습니까? 물질의 문제로 염려가 되십니까? 그럴 때 마다 새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선포합시다. 나는 새들보다 훨씬 귀하다! 하늘 아버지께서 나를 돌보시고 기르신다!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2)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
마6:31-32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주님께서는 염려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아버지 없는 고아입니다. 고아는 자기가 알아서 의식주를 모두 걱정하고 다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쬐는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염려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의 필요를 알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태어나고 학교에 갈 때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왜냐하면 자녀의 필요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필요한 것으로 인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이 날마다 엄마 오늘 아침은 뭘 먹어요 입을 옷은 있어요? 돈을 있어요? 하고 염려한다면 그 아이는 정상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의 필요를 알고 다 준비하십니다. 하물며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의 필요를 다 아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우리가 가진 소유물이나 돈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아시고 다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가정의 필요를 아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할렐루야
3.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그러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 어떻게 하면 선교할까? 어떻게 하면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어떤 결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주님을 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삶이 주님과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우선적인 위치에 두며 사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켜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둑의 조혜연 6단은 주일에는 주일예배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대회도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일의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기도합니다. 매일의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수입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직장을 들어가면 첫 월급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하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이 먼저 되고 일번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만하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입니까?
이 모든 것에 영적인 복과 육신적인 모든 복과 건강과 물질과 평안 등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입니다. 하늘도 땅도 다 주의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국의 MIT공대 경제학과 교수인 조나단 그루버 박사는 ‘종교는 유익한가’ 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몇 년전에 국민일보에서 요약을 해서 소개했습니다. 그 논문에서 교회 참석 율이 높을수록 가계소득이 그렇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서 9.1%가 증가한다. 교회 참석율이 높을수록 학력이 높아지고 소득이 높아지고 혼인율이 높아진다. 복지금 수혜율이 낮아지고 장애율이 낮아지고 이혼율이 낮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루버 박사는 ‘믿음이 강해질수록 문제들에 대한 염려가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에 자주가는 사람은 직장과 가정생활에서 성공하기 쉽다’고 결론을 내려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정리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무익합니다. 염려는 해롭습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십시오. 우리는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삽시다. 첫째, 새들보다 우리가 훨씬 귀하다는 믿음으로 삽시다. 두 번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믿음으로 삽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 때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것입니다. 맑고 밝게 주님을 찬양합시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의 평안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염려와 불안에 떠는 세상 사람들에게 환히 보여주십시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글, 김진현 목사
서산성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