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길 출애굽 제사 이슈 : 출5~7장

Gospel message

교회가 교회를 돕는다!

홈 > 말씀찬양 > 복음메시지
복음메시지

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906.png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507.png

※ 복음메시지 코너는 원고 중심으로 올립니다.

3일 길 출애굽 제사 이슈 : 출5~7장

와우! 이제, 출애굽기 5장에서 7장 <통으로 숲이야기 : 통숲>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 40년 만에 모세는 뜨거운 감자 '동족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출2:11)

자기 동족들은 모두 애굽의 노예로 고된 노동을 하며 신음하고 있을 때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 모세가 어느날 동족들의 형편을 살피러 나갔다가 하루아침에 애굽 왕자에서 살인자와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모세를 찾아오셔서 설득하시고 기적을 보여주심으로 40년 만에 다시 자기 동족들에게 나아가게 하십니다.

40년 전 애굽에서 모세는 동족 문제를 측면에서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살펴보았고 도우려는 마음으로 만졌다가 오히려 '뜨거운 감자'라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도망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의 모세는 동족의 문제를 측면이 아닌 정면에서, 그리고 '조심스럽고 조용히'가 아닌 정정당당하게 뜨거운 감자 '민족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모세가 40년 만에 애굽에 나타났지만 애굽의 반응은 시큰둥입니다.

40년 전 <애굽일보> 1면에 대서특필되었던 과거의 영화는 이미 다 사라져있고 사회면 가십난에 모세의 귀국 기사가 아주 가볍게 한 줄 실렸을 것입니다.

모세는 먼저 동족들과 재회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출6:6-7)

여기에서 '속량하다'는 히브리어로 '가알'입니다.

이는 '되찾다, 건지다, 구속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운 혈족이 되어 애굽의 압제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구속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속량'은 이후 룻기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했음에도 히브리인들은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입애굽의 족보(창46:8-27)를 근거로 출애굽 지도부 조직을 재건합니다.

출애굽 지도부 조직은 오늘 읽은 출애굽기 6장 14절에서 27절까지입니다.

이것은 이후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인구조사의 초석'이 됩니다.



두 번째 포인트 : 모세는 장정 60만 명 노동자에 대한 '임금협상이나 노동처우개선'이 아닌,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 이슈로 바로에게 직접 정면승부 합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만나줍니다.

모세가 전직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더 4장에 보면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3-14)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것'은 '우리 동족들이 어려움을 겪는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는 아마 애굽 왕 바로가 자신을 직접 만나주는 것을 보며 그래도 자신이 40년 동안 애굽 궁정에서 왕자였던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전직 왕자가 아닌 히브리 민족의 대표 정도였다면 바로는 모세를 직접 만나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를 만난 모세는 히브리 민족의 '임금협상이나 노동처우개선'을 요구한 게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애굽에서 3일 길을 광야로 나가, 즉 출애굽하여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며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이나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즉 '광야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다 죽을 수 있으니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것이 자신의 요구가 아닌 하나님의 요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메신저임을 드러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3일 길을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라고 말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출8:26)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애굽 백성들과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바로에게 말한 히브리 민족의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3일 길 모리아산 번제'를 생각나게 합니다.



세 번째 포인트 : 바로는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그리고 '히브리 민족 내부 이간 정치' 술수로 모세의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 이슈를 무력화시킵니다.


바로는 모세의 요구에 대해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라는 이유를 들어 모세의 요구를 묵살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른다!"라고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는 어부의 일을 다 알지 않아도 됩니다.

어부도 농부의 일을 다 알지 않아도 됩니다.

농부와 어부는 각자 자신의 일에 종사하며 서로 존중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농부도 어부도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과 바다와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이 말로 인해 이후 바로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들까지 다 잃고 난 후에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교만했던 바로는 자신의 힘과 권력을 과신하며 어리석은 꾀를 냅니다.

바로는 세상 정치의 본성인 '덮어씌워 모략하기'를 시행합니다.

바로는 히브리 민족 내부를 이간시키기 위해 모세의 말을 거짓말로 만듭니다.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출5:9)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 이슈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아닌 모세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말이란 것입니다.

게다가 벽돌에 쓸 짚을 주지 않으면서 전처럼 벽돌 목표량을 채우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하달되었습니다.

당시 히브리 민족은 애굽의 노예이기는 했지만 모든 시간을 강제 노역에 다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집단 모임도 했고, 채소와 생선 등을 채취할 수도 있었고 자기 밭을 개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이 요구하는 벽돌의 목표량만은 반드시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애굽의 벽돌은 나일강가 진흙을 개어서 벽돌로 찍고 말려야 했습니다.

이때 벽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진흙에 짚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 그 짚은 애굽에서 주었는데 이제 히브리인들이 그 짚까지 주워다가 벽돌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은 히브리인들에게 불가능한 작업 목표량을 정해주고 전보다 더 억압하고 압제하며 폭력을 가해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자 바로의 계획대로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 이슈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히브리인들의 모든 불만은 모세와 아론에게로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인 동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쏘아붙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5:21)



네 번째 포인트 : 이제 모세와 바로는 6개월간 9차례 협상에 들어갑니다.


바로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고 히브리 민족을 더 많이 억압하고 괴롭히자 이제 모세가 본격적으로 바로와 6개월간 9차례의 협상 즉, 서로 힘겨루기를 시작합니다.

협상은 구걸과 다릅니다.

협상은 상대방에게 내밀 비장의 카드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카드는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문명'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의 기적에 대항합니다.

당시 애굽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한 문명을 이루며 찬란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는 자신들이 이룬 문명을 가지고 모세의 '3일 길 출애굽 광야 제사' 이슈를 완전히 제압할 생각이었습니다.

모세는 6개월 동안 9차례 바로와의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협상의 동력을 만들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 : 하나님께서는 입(入)애굽 때에 사용하신 '나일강'을 출(出)애굽 1차 협상 때에 다시 사용하십니다.


입애굽의 지도자 요셉은 애굽에서의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애굽 풍요의 상징인 나일강을 가지고 놀라운 성과를 냈었습니다.

나일강은 애굽에 놀라운 풍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바로의 제1차 협상에서 하나님의 기적 카드로 나일강을 다시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을 피로 물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가 그들의 문명으로 하나님의 기적에 대항합니다.

바로는 식수를 확보할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출7:23-24)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이 비록 피로 물들었지만 나일 강가를 파서 식수를 구했던 것입니다.

모세와 바로의 1차 협상은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을 애굽의 문명이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는 오히려 '기회'였다는 사실을 바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는 그 첫 번째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 본 내용은 영상에서 옮겼으며, 저작권은 '조병호 통박사' 에 있습니다. 


0 Comments
포토 제목
a37c65bdfe62a649b27013ff27da007b_1674969923_1732.png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