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 의인의 길
1. 복(福) 있는 사람은 악인(惡人)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罪人)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傲慢)한 자(者)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律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律法)을 주야(晝夜)로 묵상(默想)하는 자(者)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時節)을 좇아 과실(果實)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行)사가 다 형통(亨通)하리로다
4. 악인(惡人)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惡人)이 심판(審判)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罪人)이 의인(義人)의 회중(會中)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大抵) 의인(義人)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認定)하시나 악인(惡人)의 길은 망(亡)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시편 1편은 시편 전체를 해석하는 길잡이 역활을 합니다.
1절에서는 복있는 사람과 4절에서는 악인이라고 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시킵니다.
5절에는 두 진영이 있고, 6절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은 이 두 길 중 어느 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며,
두 진영 중에 어느 한 진영에 소속 되어 있다는 것을 시편 기자는 1편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복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악인에 속한 두 부류가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의 길에 서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삶의 질도 철처히 분류가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 삶을 살고,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을 삽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합니다.
온 인류가 이렇게 두 진영과 두 길로 갈라지지 않으면 아니되게 된 비극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 인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아담 아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 그들은 악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타락하고 부패한 아담 아래 머물러 있던 악인이 어떻게 의인의 회중에 들어서 의인의 길을 걷게 되며 "여호와께 인정" 함을 얻게 된 것입니까?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에서 말씀 하고 있는 의인과 악인을 우리는 윤리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 복된 사람은 영혼이 잘 된 자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天下萬民)이 복(福)을 얻으리니..." (창22:18)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입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 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성경이 가리키는 죄인 혹은 악인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6장 9절에 있는 말씀처럼 "죄(罪)에 대(對)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한 그 믿음없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이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한 이들이며,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1장 25절에서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한 그 말씀을 받은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비(非)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여호와의 율법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두 길 만이 있을 뿐입니다.
영생의 길과 사망의 길만 놓여 있을 뿐입니다.
의인의 길에 서서 여호와로 부터 인정함을 받는 이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하나님의 은사로 인하여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얻은 이들이 아니겠습니까?(롬6:23 참고)
그리스도인이 갖은 의는 자기가 남보다 좀 더 선하거나 착해서 갖은 그러한 의가 아닙니다! 오직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는데, 그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롬3:24 참고) 를 의로운 자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하나님께 우리는 모두 복있는 자로서 모든 영광을 그분에게 돌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글, 김진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