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야 복이야 (창세기 10:21-32) - 박정제 목사
짐이야 복이야 (창세기 10:21-32)
오늘 아침 이 찬양의 가사가 나로 감동케 한다.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 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실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는 분 나와 같이 있고 싶어하신단다. 광야와 폭풍중에도 나를 인도하신다.’
라마나욧선교회 목회사관학교 1기생들 모임이 있다. 라마나욧선교회의 초창기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시절 그럼에도 기쁨으로 가족처럼 함께 했던 소중한 분들과의 만남이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셈의 후손들을 기록하고 있다. 소중한 이름들이 나열된 가운데 주목되는 설명이 붙은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벨렉이다. 25절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일부 학자들의 견해는 이때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분리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더 심층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며 들어가 묵상해 본다. 이 ‘벨렉’이란 이름은 ‘팔락’(나누다)에서 나온 이름으로 ‘분리’란 의미이다. 또 벨렉의 아우의 이름이 욕단이며. ‘욕단’의 뜻은 ‘작다’이다. 이 두 형제에게서 혈통이 분리되어 벨렉은 아브라함계의 조상이며, 욕단은 아라비아계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한 형제이다. 아무리 언어가 혼잡케 되는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다고 형제가 나누어지는 이유라고 말할 수 없다.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많은 일을 겪는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만 있었을까? 그 안에서 서로는 많은 사랑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왜 나누어지는 것인가? 누군가 <잘 못 해서>라고 말하면 편하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형제가 아닌가? 잘못된 형제, 부족한 부모, 거친 이웃이란 이유를 들어서 분리를 선언하는 일은 매우 쉽다.
지금 셈의 후손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축복을 품에 안은 후손들이다. 이 하나님의 축복을 품에 안은 이들을 어찌하든지 사단은 나누려 한다. 세상 어디에 문제없는 가정이 있으며, 힘겹지 않은 직장이 있으며, 가시 없는 이웃이 있으랴~
축복을 품은 가문임에도 이런 어려움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축복의 언약을 담은 가문이기에 더 힘겨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축복을 담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나누어지는 이 가정의 현실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
주님은 오늘 물으신다. 너 힘들어서 나눌래~
나누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네가 그것을 지키라고 보낸 것이야~
벨렉이 살던 시대 누구도 형제와 나누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간 계보와 아라비아 계열로 떨어져 나가는 순간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이 벨렉과 욕단이란 이름이다.
아마도 벨렉을 낳은 아버지 에벨은 가문에 담긴 소중한 축복을 이어가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아들을 낳고는 이젠 끝이야 하면서 나누다 라는 뜻을 담아 벨렉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놀랍게도 에벨의 이름의 뜻은 <강을 건너다>라는 뜻이다. 그는 그야말로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누어버리고 다음에 낳은 아들의 이름 욕단은 <작다>는 뜻이다. 즉 그렇게 나누면 편할 줄 알았는데 작아지더라는 것이다.
저 사람 버리면 더 클 줄 알았는데 역사는 작아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진다. 저 사람이 짐이라 생각해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더 빨리 가고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클 줄 알았는데 오늘 성경은 작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누구도 이런 갈림길에서 혼자의 힘으로 이 축복을 이어갈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요즘 나를 보는 사람마다 피곤해 보인다고 말한다. 많이 피곤하고 육체보다 마음이 많이 지쳤다. 그리고 올라가는 일에는 열정이 솟아오르지만 내려가는 일에 열정을 품고 가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큰 짐이다. 그래서 나도 분리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주님은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이것은 짐이 아니라 복이라 말씀하시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내게는 에벨이나 벨렉과 달리 이런 나의 약함을 아시는 그리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는 주님이 계신다. 광야에서나 폭풍중에도 나를 지켜주시며 나를 아시며 나와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래서 오늘도 그분의 품에 그분의 말씀에 나를 던진다. 주님~
하나님의 축복을 내 힘으로 지켜낼 수 없다. 내려가는 길을 만들고, 다음세대 사역자들을 세우며 놀라운 꿈을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내가 져야 할 그 짐을 그래서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내게 힘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다시 집어 올린다. 나누지 않고 오늘도 연합하며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짐이라 말하지 않고 복덩이라 고백하며 주님이 허락한 이 사명을 붙잡고 가겠습니다.
주님 그래서 저를 부르셨지요.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저를 부르신 것이지요. 주님과 함께 가자고 ~ 인간의 힘으로 형제와도 나누어야 하고, 부부와도 나누어져야 하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나누어지는 이 세대 가운데 축복을 담은 사람으로 연합을 이루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이 길을 여신 주님을 찬양하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저는 이 길을 걷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연합을 위해 부르심을 믿고 오늘도 나누지 않고 품으며 가겠습니다. 주여, 내게 힘을 더하소서.
※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