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아니라 한 몸이니 (마태복음 19:3-12)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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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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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니라 한 몸이니 (마태복음 19:3-12)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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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니라 한 몸이니 (마태복음 19:3-12)


5월 가정의 달 첫째 주간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가정>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목양의 자리에서는 가정의 달을 1년에 두 번을 정해서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식탁을 나누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나는 너무도 좋다.


가정의 이런 아름다운 행복이 사라지는 때에 이 땅에 다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의 멋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변론을 통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산헤드린에게 파송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혼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3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 종교회의와 로마 당국에 고소할 거리를 찾아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다. 특히 현재 위치가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이혼과 부정한 결혼의 문제로 세례 요한이 처형된 곳과 가까운 곳으로 그들이 제기한 이혼문제는 바로 예수의 처형을 획책하려는 음모(陰謀)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질문은 예수님에게 매우 위험한 질문이다.


이혼 문제에 예민한 헤롯을 자극하기 위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죽을 수도 있는 문제에 예수님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아주 편안하게 대답하신다. 4-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들의 의도를 모르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아주 당당하게 말씀하시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정은 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며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됨을 분명히 밝히신다. 자신의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음에도 부부는 결코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한 몸이라고 외치신 외침이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아멘.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삶이란 나도 모르게 세상적 가치관으로 한 몸인 아내를 한 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하라고 외친다. 떨어지는 것이 편하다고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유혹인지를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아멘.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기회를 잡았다고 이렇게 반론을 제기한다. 7절 ‘여짜오된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이혼을 말한 모세시대로 돌아가 보자. 모세는 광야를 돌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가르쳤다. 그러나 애굽의 노예의 삶, 세상적 가치관에 젖어있던 그들은 끊임없이 반역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광야에 살면서 그 많은 사람이 붙어살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그 속에서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이때 모세는 광야에서 문제가 된 부부들에게 이혼하려면 이혼증서를 써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24:1절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여기서 의도를 잘 보아야 한다. 여성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던 시대에 모세는 그냥 아내를 버리지 못하도록 <수치되는 일>이란 분명한 기준과 이혼 증서를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모세의 의도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버리지 못한다고 하면 몰래 더 악한 짓을 할 수 있기에 그렇게 허락한 것이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간통죄마저 없어졌다. 온갖 음란한 일이 난무한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둘이 아니라 한 몸인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힘겨운 시대에 주님은 말씀하신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라고 ....


제자들 마저도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렇게 대답한다. 10절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자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가 이혼과 재혼 또는 축첩(蓄妾)의 제도가 성행하고 있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도 이미 그런 세상적 가치관에 빠져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들려졌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도 삶이란 현실앞에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이상으로만 생각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둘로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존재하고 있다. 주님~


주님은 오늘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이제 아내와 함께 산 지가 한 달 지나면 30년째가 된다. 30년이란 세월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아내와 나 사이를 둘로 만들 이유가 너무도 많을 것이다. 세상적 가치관은 이런 이유로 둘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그 많은 이유는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할 이유이며, 그렇게 다른 우리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명이라고 믿는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꼭 맞는 짝을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보배라고 믿고 오늘도 그렇게 더 한 몸이 되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아멘.


주님, 가정의 달 5월을 시작하며 가정의 가장 원초적 관계인 부부가 한 몸임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몸인 부부의 삶을 어찌하든지 깨뜨리려는 세상적 가치관들이 둘이 되라고 외치지만 오늘도 죽음앞에서도 당당히 외치신 주님의 외침을 가슴에 새깁니다. 한 몸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둘이 하나가 된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모델로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모여져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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