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서야 (창세기 27:1-45) - 박정제 목사
가정이 서야 (창세기 27:1-45)
오늘 이 찬양의 가사가 내 맘을 흔든다.
‘어둠 속 헤매이던 내 영혼 갈길 몰라 방황할 때에 ...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의로운 자라 내게 말씀하셨네 완전하신 그 은혜로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오직 은혜로 나 살아가리라 ... 주의 능력으로 나는 서리라 ... ’
어제 한 사모님의 방문을 받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20년 넘게 목회에 전념해 오신 분이다. 개척 때부터 어르신들을 업고 다니시며 병원치료도 해 드리고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하신 분들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목사님의 암 발병과 함께 사모님은 생활을 책임져야 했고 교회와 가정을 책임지며 항암 치료를 하시는 목사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짐을 홀로 맡으셨다.
힘겹지만 어렵게 버틸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성도님들의 이탈과 하시던 일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버틸 힘을 잃어버리고 너무 힘겹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보니 기력도 없어지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오셨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만나 주지도 않아서 고민하다가 <신문지 한 장의 정신>을 기대하고 오셨다.
이분으로 인해 밤새 마음 앓이를 하던 내게 오늘 찬양의 가사 <완전하신 그 은혜로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리>라는 가사가 울림을 가지고 들려진다. 주님~ 붙잡아 주소서. 주님이 힘을 주소서. 은혜 아니면 설 수 없습니다. 주님~
한 주간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오늘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본문에는 이삭이 나이 들어 장자의 축복을 하는 장면이다. 리브가의 도움으로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받고 온 가정이 흩어지는 안타까운 장면이다. 이 모든 장면을 만든 이유가 나온다.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이삭이 눈이 어둡지 않을 때 장자의 축복을 하였으면 이런 실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자가 눈이 어두워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된다.
어제 사모님과의 대화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났다. 하나는 그분의 아픔이 너무도 힘겨워 보여 빨리 도와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렇게 영적으로 버티기 힘든 분이 많은데 코로나로 중단된 영적 충전의 자리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님, 이 종이 주님의 싸인을 잘 보는 종이 되게 하소서. 이 종이 분별력을 잃지 않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하소서.
오늘 본문의 또 하나의 모습은 리브가의 모습이다. 5-6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내가 들으니>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는 것을 남편인 이삭에게 직접 듣지 못하고 엿듣고 있다. 가정이 부부가 한 몸이 되지 못하고 남편과 아내가 따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서 부부가 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런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정에 얼마나 큰 파장과 아픔을 가져왔는지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만약 이 순간 부부가 함께 이런 일을 상의하고 축복도 함께 했더라면 이 가정이 이렇게 부모와 자식이 떨어지고 형제가 원수되는 이런 일이 있었을까? 마귀가 틈타지 못했을 것이다. 부부가 한 몸인데 두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심지어 리브가는 이런 고백까지 하고 있다.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리브가는 거짓으로 야곱을 축복받게 하려고 남편을 속이면서 이런 고백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수단이 악한 것은 결코 옳을 수 없다. 물론 어머니 리브가가 이렇게까지 하는 근거를 말하고 있다. 창26:34-35절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어머니로서 에서의 행동이 옳지 못함을 알기에 또 며느리들의 모습을 통해 실망했기에 이런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했음을 이해는 간다. 이 사건에 대해 리브가는 이렇게 말할 정도다. 46절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이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내 삶이 싫어졌거늘> 메시지 성경은 이를 <지극지긋해요>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 성경은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라고 번역하여 리브가의 에서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리브가가 이 일로 실망했는지 상상이 간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누구에게나 이런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거짓을 동원하여 에서를 밀어내고 야곱을 축복하는 일이 정당화 될 수 없다.
성경은 어머니 리브가와 에서의 대화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책망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지도자의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유된 생각으로 자녀를 함께 축복하며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하게 깨닫는다. 내려가는 길을 만드는 내게 주님은 더 확실하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하신다. 아멘. 아멘.
아울러 가정에 서로의 다름을 가지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틈을 그냥 놔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말씀하신다. 이런 틈을 메꾸는 일이 상상이상으로 힘겨운 부분이라 아마도 리브가는 포기하고 이런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았음을 성경은 보여준다. 형제가 원수가 되고 부모와 자식이 평생을 떨어져 살아야 했다. 심지어 성경은 리브가의 죽음조차 기록하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그렇게 축복받기 원했던 야곱은 가나안에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 삶으로 온 삶이 상처투성이 인생을 살게 되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힌다.
그동안 한국교회도 리브가처럼 목적이 옳다고 바르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여러 고통을 겪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가정이 서야 자녀가 서고, 교회가 서야 성도가 선다.
댐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틈이다. 부부의 작은 틈을 메우려 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는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 나는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나부터 작은 틈들을 메꾸며 가정을 잘 세워가며 또한 내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사명을 다시금 일깨워주시고 계신다. 주님 이 종을 사용하여 주소서. 주님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내려가는 길을 잘 걸어가게 하시고 깨어진 가정들을 잘 세워드리는 삶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비빌언덕과 플렛폼으로 쓰여질 30억 씨앗자금을 허락하소서.
2. 이곳에서 진짜 목사들이 세워져 다음세대를 일으키게 하소서.
3.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준비할 사람과 재정과 길을 열어주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