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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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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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교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6:14)


본문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 얼마만한 인내가 필요한가를 예수님께 질문했던 이야기는 마태복음 1821절부터 22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전통적인 배경과 문화적 상황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잘못을 범한 형제를 세 번 정도만 용서해도 참으로 신앙심이 돈독하고 아량이 넓은 고상한 인격자로 인정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서 사도 베드로가 일곱 번의 용서를 거론한 것은 상당한 발전이며, 파격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넌지시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한한 용서와 사랑의 이해를 가르치심으로써 베드로의 자기중심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생각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실로 용서와 사랑이 인간의 의로움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와 사랑이 인간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크고 은밀한 죄보다 훨씬 더 큰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와 같이 일곱 번을 용서하면 과연 합당합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 특히 랍비들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당시 랍비들은 형제의 허물에 대해 오직 3번만 용서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참된 사랑은 자기 나름대로 한계를 정해 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끄님없이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용서의 한계를 정해 두고 그 안에서만 용서하겠다는 것은 이미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생각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끝없는 용서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끝없는 용서란 어떤 용서일까요?


첫째. 예수님의 용서는 전인적인 용서입니다 (44:22, 1:18)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상대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추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그 사람이 잘못을 범하거나 또는 자기를 섭섭하게 대하는 날이면 지체하지 않고 그 추한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서 그 때의 허물을 지적하면서 비방합니다.

그러나 참된 용서는 이와 같이 용서했다가 다시 그 내용을 번복하여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흰 눈보다 더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악을 완전히 씻어주시는 것이 참된 용서입이다.


둘째. 예수님의 용서는 한계가 없는 용서입니다. (6:14, 3:13)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합당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치상으로는 490번 용서를 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본래의 의미는 완전하고도 철저한 용서를 말합니다. 어떤 제한적인 횟수를 정해두지 않고 끝없이 용서하라는 아름다운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용서란 횟수나 시간이나 그 질에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 크고 넓은 용서와 사랑을 본받아서 무한한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용서는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용서입니다. (18:35, 11:25)


용서란 단순히 이웃의 허물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말과 생각만의 용서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참된 용서는 말과 생각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써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에 진정으로 동참하고 그 아픈 부위를 싸매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사랑과 긍휼의 모습을 갖춘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용서에 대해서 왜 이렇게 행하기 어려운 교훈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용서에 대한 교훈은 어떤 것일까요?


1. 그것은 인간은 끝없이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4:15, 요일 1:9)


예수님의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의 용서를 하라는 말씀 안에는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간파하신 주님의 세밀한 사랑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이며, 항상 죄를 범하고 그 죄 아래 머물 수밖에 없는 넘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에 이처럼 순간순간 죄와 허물을 범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인간에게 주님의 끝없는 용서가 없었다면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실체를 넉넉히 체휼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철저히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끝없는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도 이미 우리에게 끄님없는 사랑과 용서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2.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용서에 대한 또 하나의 교훈은 주님은 십자가 용서를 친히 가르쳐주셨다는 것입니다. (21:17, 18:22)


예수님은 단순히 입술로만 이런 끝없는 용서의 교훈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용서의 대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실제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놓음으로서 그 용서와 긍휼과 사랑의 댓가를 치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당신을 부인했을 때에도 베드로를 책망하거나 징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상하고 낙심한 마음을 어루만져서 위로하시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용서란 단지 입술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상대로 하여금 더 이상 아픈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는 데까지 용서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참된 용서입니다.


3. 마지막으로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교훈은 참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4:32)


그렇습니다. 참된 용서는 결코 자기 자랑이나 자기 의의 수단이 되는 것이아닙니다. 참된 용서란 먼저 상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게 잘못을 범한 이웃과 형제의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 상대방의 약한 부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밑바탕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방송을 듣는 모든 여러분들이 십자가 사랑에 힘입어서 진실로 용서에 능한 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 부터 자신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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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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