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쁜 소식은 슬픔과 고통을 대신한다 - 박진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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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쁜 소식은 슬픔과 고통을 대신한다 - 박진생 목사

박진생 0 2723

주님께 드릴 기쁨의 삶 (6: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하시는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승리하기 위해 기록한 책 같지만 오늘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와 함께 시작된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책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라고 묻는 다면 여러분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저의 대답은 성경입니다.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은? 성경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위해서 기록된 뛰어난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민6장의 서론의 나실인의 법이라는 주제의 말씀입니다. 나실인은 성별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나자르에서 유래된 말로서 성별, 헌신, 구별된 자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나실인으로서 주님 앞에 성별된 사람이요 구별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중 나실인에게 주어지는 말씀의 법도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어떻게 교훈하며 적용되어야 하는지 2가지로 교훈을 받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의 기쁜 소식은 슬픔과 고통을 대신한다.

 

6: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6: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는 것은 삶과 신앙의 분별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술의 초는 술이 시어진 것을 말씀합니다. 술보다 더 독하며 사람의 슬픔이나 고통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69편은 다윗의 시이지만 다윗 보다 더 큰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2:7에서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라라고 예표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16:16에서 주는 그리스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이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에서도 예언적인 말씀이 예표로, 모형으로, 그림자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성취: 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적들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며 목말라 하고 있을 때 그 고통을 잊게 하려고 쓸개 탄 포도주, 즉 독한 술과 같은 음식물을 입에 대게 하여 먹게 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마27:34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 임금 마귀로 표현된 대적은 예수님께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늘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하려고 독한 술을 마시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술뿐이 아닙니다. 담배, 마약이나 이런 것을 하는 이유가 다 잠시나마 고통을 잊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머님과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일본에 의해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남양 군도에 끌려갔다가 돌아 오셔서 일찍 돌아가셨는데 혼자된 어머니는 삶이 슬펐는지 늦은 밤만 되면 아들이 자는 줄 알고 창가에 앉아서 혼자된 삶이 고통스러워 슬피 울었습니다.

 

슬픈 모습을 보고 자란 나도 어느덧 슬프고 고통스런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해있었습니다. 저의 슬픈 실의에 찬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로뎅 이라고 부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어찌 저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제가 먼저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고통당하여 슬퍼하는 자들에게 기쁜 소식 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61장은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인 B.C Before Christ 700-680년 사이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관을 주어서 티끌 같은 인생을 대신할 것이며, 기쁨의 기름으로 슬픔을 대신하며, 성령의 기름을 부은 자들은 슬픔 대신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근심 대신에 주님 앞에 찬양 할 수 있도록 찬송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을 예표하는 구약의 이삭은 미소라는 기쁨의 뜻이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기쁨인 희락이 있습니다.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

주님은 기쁨의 복음의 소식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던 우리가 고통으로 슬퍼하던 우리가 복음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권위의 말씀에 순종하라.

 

6: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유대인들에게는 머리가 많고 좋으면 힘과 능력이 그곳에서 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칭찬할 때 성경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고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실인이 머리에 삭도를 대는 것은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힘과 능력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삼손도 하나님께 성별된 나실인 이었습니다. 힘이 세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삼손과 들릴라라는 성경 기록이 있습니다.

 

대적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삼손이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들릴라를 통해 공모하여 어디서 블레셋을 이길 힘이 나오는지 알아보려고 질문했으나 3번이나 가르쳐주지 않자 들릴라가 그를 재촉해서 번뇌케 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드릴라에게 진심을 드러내어 말했습니다.“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떠나가고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화나 영상은 머리가 밀리면 능력을 잃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 그들의 생각이었고

 

오늘 우리는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깨닫아야 할 것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에서 밀려 나도록 한다면 우리는 주님이 주신 힘과 능력이 힘을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 즉 세상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전5:19,20 말씀에서 성령의 나타남을 소멸치 말고 머리 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것은 성령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예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언을 물론 은사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삼손이 머리가 밀려 힘과 능력을 잃어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소멸되어 이방 사람들과 같이 믿는 자인지 믿지 않는 자인지 구분이 안되게 하지 말고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예언된 말씀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머리를 밀어서 능력이 소멸되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된 것이 아니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오늘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힘과 능력은 그리스도가 힘이요 그리스도가 능력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몸이요 우리는 지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성령이 하시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도록 주님의 예언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이 되어서 지금도 좋지만 다가올 영원한 기쁨의 주님 나라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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