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무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27: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27: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27: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27: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27:62~66)
본문은 무덤에 갇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은 무덤 속에 안장되었고 제자들과 여인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었기 때문에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을 굳게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무덤은 큰 돌로 막히고, 인봉을 한 후 경비병들로 삼엄하게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야 비로소 원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든 행위가 결코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덤 속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첫째, 무덤 속은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어둡고 컴컴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깊은 어두움 속에 갇혀 계십니다. 둘째, 무덤 속은 차가운 곳입니다. 따뜻한 온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차다 찬 냉기로 가득한 곳이 무덤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무덤 속은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입니다. 바깥 세상과 전혀 소통할수 없는 단절된 곳에 지금 예수님이 갇혀 계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 비해서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제자들의 상태는 첫째, 슬픔의 상태입니다.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동료의 배반과 스승을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는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허탈함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제자들은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은 그들은 사실상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생명이 떠났기 때문에 그들 또한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통한 날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어둡고 차고 완전히 단절된 무덤 속에 갇혀 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삼위로 계시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하나님이요, 동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무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통과 무덤속의 비애를 지금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모두 동일하게 감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를 잃는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무덤 속의 슬픔을 성부 하나님을 통하여 함께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덤 속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누워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 세상에 슬픔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들을 잃는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은 없습니다. 자식이 아파할 때 그 아픔을 대신하여 당하고 싶은 것이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비애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절규하실 때에, 그리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절규하신 그 때에도, 하늘 아버지의 마음과 심정은 당신이 당하시는 것 이상 힘들고 아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였고 하나님도 독생자 예수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하나님이 캄캄하고 차갑고 단절된 무덤 속에 갇혀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 하늘 아버지와 독생자를 그토록 괴로운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가룟 유다 때문 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로마 군병들 때문이었습니까? 더더욱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우리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죄는 빛을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죄는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어두운 곳으로 몰아냅니다. 죄는 우리를 차가운 곳으로 몰아냅니다. 사랑이 없는 삭막한 곳으로 우리를 몰아냅니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바로 이 죄가, 나의 죄가, 우리의 죄가, 인류의 죄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내몰았으며 그리고 지금 무덤 속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총을 주시려고 우리의 하나님이 지금 무덤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과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들에게 광명의 새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주님이 지금 무덤 속에 누워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불신의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아니하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믿어야 하고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덤에 갇혀있는 그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고백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오늘, 우리도 함께 무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악된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근본적인 죄도 모두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되셨을 때에 우리의 죄도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속에 있을 때에 우리의 죄도 무덤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믿음이 바로 내가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함께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슬픔이 기쁨으로 나의 절망이 희망으로 나의 죄로 인한 죽음이 생명과 구원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듣는 모든 여러분들이 이 시간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은 바로 나의 죄를 위함입니다. 그렇게까지 아니하셨으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었던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글, 조성호 목사
서울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