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4편 [아브라함 방식의 기도]-2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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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4편 [아브라함 방식의 기도]-2 현명인목사

현명인 0 1627
창세기 18:23-33 
아브라함4편 
[아브라함 방식의 기도]-2

1.2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크고 무거워, 하나님은 그곳의 모든 악인들을 멸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은 소돔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곳으로 향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을 여섯 번이나 바꿉니다. 자신의 소망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말 바꾸기식 기도를 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에 더하여 하나님을 상대로 속 마음을 숨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죽지 않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기에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응답을 해주시는 것일까요? 마치 아브라함이 기도의 주권을 쥐고 있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끌어가고 계시기 때문은 아닐까요?

1.3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기도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기도 하고, 중간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같은 내용으로 너무 많이 기도하다보면 이렇게 해도 되나 싶어 멈출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오지랖이 넓어 바쁘신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계획이 바뀌게 되는 경우에도 기도를 멈춥니다. 기도하는 게 식상해지고 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기도를 멈춥니다. 내 기도가 공중에서 뱅뱅 돈다는 느낌이 들 때도 기도를 멈춥니다. 중언부언 기도 할 때도 있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를 멈춥니다.

  기도의 능력에 대한 체험이 없는 경우에도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도 기도하기를 매우 어려워합니다. 멈추어졌던 기도는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중권세를 잡고있는 사단이 자기에게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도의 기도를 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라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존재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도 그분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여기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추상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바라는 실상이 믿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면 결국 그 믿음은 허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하게 됩니다. 육의 멸망이 아닌 영혼의 멸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보혜사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지식과 경험의 범주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려고 합니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고, 신앙의 연수 좀 됐다고해서 텅빈 깡통 머리에서 예수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만 합니다. 장담하건대 우리중 누구라도 하나님을 안다고, 예수님을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진짜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응답 해주시는 하나님이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기도하면 응답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하고, 기도에 대한 목적과 동기가 무엇이고, 그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돌이켜 봐야합니다.

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그 주변의 유해한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하시고자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정리하려는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태어날 아들 이삭과 그의 후손을 위하여, 죄악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불로 덮어버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곳에 있는 모든 악인들을 멸하시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온 도시의 남자는 남자와 더불어 뒹굴고, 여자는 여자와 더불어 뒹굴면서 자기들끼리는 서로 잘한다 잘한다 부추깁니다. 그 동성애의 음란한 짓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끝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그 도시의 일을 ‘본’이라는 거울로 오늘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즉 지금의 우리는 그 때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하는 시간 속에 던져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충분히 돌이킬 시간을 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짐승의 대가리 노릇을 하면서 세상을 동성으로 여기는 동성애의 죄를 켜켜이, 그리고 열심히 쌓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5-6)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멸하신다는 사실을 듣게 된 아브라함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아들과 같은 조카 롯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며 두려움반 기대반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니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의인과 악인을 한 통속으로 싸 잡아 보신다면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인다고 하시니 이거야말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은 부당한 일을 행하시는 게 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만일 그 지역에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오십 명의 의인이 있다고해도 용서하지 않고, 정말 그 곳을 멸하실겁니까?”

2.2
  하나님은 쿨 하게 답변하십니다. “그 곳에 의인 50명 있으면 내가 용서해 주겠노라” 그러자 아브라함은 의인의 수를 낮춥니다. 
  45명이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멸망시키지 않으마” 
  40명이 있다면, 30명이 있다면, 20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용서해 주겠노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명이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들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겠노라” 
  하나님의 대답은 두려움을 갖고 질문한 아브라함의 예상과는 자비로운 음성의. “내가 용서하겠다”, “멸하지 아니하겠다”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도의 내용을 자꾸만 바꿉니다. 즉 자신이 정말 원하는 근사치 값을 얻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는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이 기도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실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내용을 간구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고 계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날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답변만 얻으면 그대로 해주시는 분이심을 그간의 여러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에 이를 감수하고 기도합니다. 

  여기에 불완전한 피조물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말을 바꿉니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유익의 크기와 그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마저도 쉽게 쉽게 바꿔버립니다. 매우 이기적인 기도를 서슴치 않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2.3
  하나님을 시험해보는 듯한 변덕스런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을 농락하는 말투입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왕을 농락해도 죽는 판에, 하나님을 향한 조롱식 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아브라함에게 진노의 불이 먼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부정하고 조롱하면, 그렇게 행하는 자들에겐,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합니다. 살아서 버려둠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버려둠을 당하고 있는 과정속에서도 육적인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완악함과 강퍅함이 가시나무처럼 자랍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부어지는 것은 악인의 죽음 이후에 본격화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시지만, 대적하는 자들에게 부으시는 진노의 잔을 통해서도 그 영광을 회복하십니다.  <계속>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름다운열매맺는 좋은나무교회
<아둘람복음공동체ㅣ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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