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체험 : 출1~2장
와우! 이제, 출애굽기 1장에서 2장 <통으로 숲이야기 : 통숲>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 창세기 12장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출애굽기 1장에서 성취됩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와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사이에는 400여 년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 400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와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 사이에도 400여 년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우리는 400여 년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400년의 시간 탓에 창세기 50장과 출애굽기 1장은 공기부터 다릅니다.
창세기 50장은 애굽에서 요셉의 가족들이 훈훈하게 지내는 이야기로 끝이 났습니다.
마치 가을 추수 때처럼 넉넉하고 푸근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장은 갑자기 한겨울 한파가 몰아쳐 온 것처럼 너무나 춥습니다.
애굽은 400년 동안 왕조가 두 번 바뀌었고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에서 왜 그렇게 많이 살고 있는지 이유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애굽의 왕조가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늘의 별처럼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으로 시작했던 애굽 생활은 400년 만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자그마치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한 문명을 이루며 나날이 강대국으로 번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히브리 민족의 숫자는 애굽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이유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애굽 왕실은 3단계에 걸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첫째, 히브리 산파들을 통해 간접살인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눈에 보이는 애굽 왕 바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프로젝트는 실효를 거두지 못합니다.
둘째, 그러자 애굽은 애굽의 군인들을 동원해 히브리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는 일을 시행합니다.
이때 모세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셋째, 애굽은 히브리 민족을 애굽의 노예로 삼습니다.
그래서 60만 명을 무임금, 유노동자 노예로 삼아 국책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애굽은 히브리 노예들을 통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등을 건축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 : 애굽 제국 경험은 '제사장 나라'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430년간 살게 하시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제국'을 직접 경험하게 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적으로 제국을 경험한 그들이 출애굽하여 나라를 세울 때 제국이 아닌, 제사장 나라를 세우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셨던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를 처음 세우며 613가지 율법을 주실 때 헌법 제1조와 같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
제국은 공성전, 노예제도, 물질주의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제국이란, 나라가 강해지면 다른 나라를 공격해 그 나라의 성을 빼앗고 그 백성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끌어다가 무임금, 유노동자로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면서 오직 물질주의만을 추구하는 가장 수준 낮은 인간들의 정치 행태입니다.
요셉이 살던 애굽은 '12왕조'였습니다.
이때 12왕조는 흉년이라는 자연재난으로 인해 고대 근동의 여러 어려운 식량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12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힉소스 왕조'는 12왕조 때의 요셉의 혁혁한 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입애굽 이후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요셉의 후손들로 하여금 거주이전과 직업 선택을 제한하게 했습니다.
그 후 힉소스 왕조는 또다시 '18왕조'에게 멸망하는데 '18왕조'는 애굽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나라로 그들은 곧바로 제국으로 발돋움했던 것입니다.
애굽의 18왕조 당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와 뮤지컬이 바로 '아이다'입니다.
출애굽기 1장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바로 '18왕조'의 바로였습니다.
애굽의 18왕조는 오페라와 뮤지컬 '아이다'의 내용처럼 당시 '누비아'라 불렸던 고대의 에티오피아를 점령해 그 나라의 왕과 공주를 비롯해 수많은 노예들을 끌고오며 점점 더 제국으로 나아가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제국으로 나아갈수록 애굽의 수많은 젊은 남자들은 애굽의 군인이 되어 나라 밖으로 멀리 원정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 끌려온 노예들과는 달리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이 타국이 아닌 자국처럼 느끼며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애굽 내에서 히브리 민족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애굽의 젊은 남자들은 멀리 원정을 떠나고 없으니 그 사이에 혹시 히브리 민족이 애굽을 차지하지나 않을까 애굽은 그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은 한 명의 노예도 아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사내아이들에 대해 영아살인명령을 내렸던 것이고 강제로 '엄하게' 노역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엄하게' 당한 노동 여기서 '엄하게'는 히브리어로 '페레크'입니다.
이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억압한 상태로 가혹하게 노동을 착취당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애굽의 노동 착취가 극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신약성경을 보면 헤롯이 베들레헴의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에 대해 영아살해명령을 내렸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권력자의 패역함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렇게 애굽에서 온몸으로 제국을 경험하며 '제사장 나라'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포인트 : 모세가 갈대상자를 탄 이유는 4가지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탔고, 모세는 갈대상자를 탔습니다.
'방주'와 '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인데 같은 단어로 쓰입니다.
모세가 생후 3개월 만에 갈대상자를 탄 이유는 4가지입니다.
첫째, 엄마가 태웠기 때문입니다.
생후 3개월 된 아이가 스스로 탈 수는 없습니다.
모세의 아버지는 갈대상자를 만들고, 엄마는 태우고, 누나는 뒤따라가며 망을 보았습니다.
둘째, 이렇게 죽을 확률 99.9%임에도 불구하고 3개월 된 아이를 갈대상자에 태워 나일강에 보낸 이유는 그들이 민족은 이루었으나, 나라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애굽의 '제국주의 정책' 때문입니다.
당시 애굽은 그동안의 소극적 제국주의에서 적극적 제국주의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정 나간 애굽 남자 군인들 대비 히브리 사내아이들 인구조절 정책을 시행한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시기를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탄 갈대상자를 애굽 공주에게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모세 한 사람이 준비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출애굽의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 : 80년 동안 모세는 출애굽을 위해 3가지를 준비했습니다.
8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3가지 교육을 시켰습니다.
첫째,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신앙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떨기나무 전에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40년 동안 애굽에서 왕자가 배우는 제왕학을 통해 협상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로와 대면하여 9번의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왕과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
전직 왕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셋째,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로 사전 답사를 시키셨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양을 쳤던 모세는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돌보듯 히브리 민족을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 : 히브리 출신으로 <애굽일보> 1면 톱기사에 오른 사람은 요셉과 모세, 두 사람입니다.
입(入)애굽의 지도자 히브리 출신 요셉이 <애굽일보> 1면에 대서특필 되었을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 요셉, 하루아침에 애굽 총리로 등극하다!
400여 년이 지난 후, 출(出)애굽의 지도자 히브리 출신 모세도 <애굽일보> 1면에 대서특필 되었을 것입니다.
'촉망받던 애굽 왕자 모세, 지난밤에 망명!'
사실, 모세가 촉망받던 애굽의 왕자의 자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망명자가 된 이유는 일단 동족들의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위를 다르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출2:14)
동족들은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자신들도 죽이려 한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죽을 확률 99%였다면 이때는 죽을 확률이 100%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80세가 되어 또다시 동족들에게 오해를 받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5:21)
이때 동족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미운 물건이 되게 하여 죽이려 한다고 또다시 오해합니다.
출애굽 후에도 광야에서 모세는 동족들에게 또 오해를 받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민16:13)
동족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고 왕이 되려 한다고 오해합니다.
이렇게 모세는 <애굽일보> 1면 대서특필 사건을 남기면서 미디안 광야로 망명을 떠나야 했고 이후에도 출애굽세대 동족들에게 여러 차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모세에 대한 동족(출애굽세대)들의 오해는 안타깝게도 그들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러한 모세에 대한 오해는 모세에게 40년 동안 교육받은 그들의 자손 '만나세대'에 가서야 풀어지게 됩니다.
모세의 망명은 앞서 말한 대로 표면적으로는 동족들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깊게 들어가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광야 생활 사건 답사'를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입애굽의 지도자 요셉이 22년 만에 그의 고난의 문제가 해석되었던 것처럼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도 광야 생활 40년 만에 광야 생활이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 본 내용은 영상에서 옮겼으며, 저작권은 '조병호 통박사' 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