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길잡이4강 : 헌금과 십일조]-2 현명인목사
[갈라디아서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루매 거두리라"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신앙길잡이4강 : 헌금과 십일조]-2
십일조에 관한 말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전한 바 있습니다. 십일조는 신앙적 교훈과, 신앙적 교훈에 따른 믿음의 실천과, 믿음의 실천을 위한 말씀에 대한 전적 순종이 있을때 비로소 10분의 10전체를 대표하는 10분의 1로 드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십일조 폐지론이 나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이라서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킹제임스흠정역/마5:17-19)"나는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십일조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창14:20).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도 벧엘에서 십일조를 다음과 같이 서원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킹제임스흠정역/창28:22)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각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라고 지적하시면서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마 23:23, 눅 11:4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들은 공의와 긍휼과 믿음'이고, '다른 것은 십일조'를 가리킵니다.
야곱의 서원에서 보듯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서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한 것은 그 전부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간주함입니다. 생명도 하나님의 것인데 물질이야 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의 것이요, 내게 있는 그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중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9를 내가 쓰고 나머지 1을 드린다는 게 아니라, 1이 그 10의 기준이며 근거요, 남은 1이 아니라 10을 시작하는 1이요, 10을 대표하는 1입니다.
그러므로 준비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선적이어야 옳습니다. 쓰고 남은 1이 아니라 쓰기 전의 첫 숫자로서의 1이어야 마땅합니다. 첫 1은 그 전부를 대표합니다. 10 전부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함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십일조는 10분의 1이 아니라 10을 대표하는 1이요, 10의 마지막 1이 아니라 10을 시작하는 1입니다.
말라기 3장의 십일조 규정은 강한 어조의 명령으로 일관합니다. 만일 이걸 폐지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말씀을 왜곡 해석하는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따지고 들어가보면 십일조 드리기를 아까워하는 욕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 입니다.
"어찌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훔쳤다. 그러고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 하나님의 것을 훔쳤습니까?’라고 하였다. 너희가 내게서 훔친 것은 십일조와 예물이다. 온 나라가 나의 것을 훔쳤으므로 너희에게 저주가 내렸다. 너희는 창고에 너희가 거둔 것의 십일조를 가져와 나의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여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가 쌓을 공간이 넘치도록 너희에게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아가페쉬운성경/말 3:8-10)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면 도둑질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네 번이나 도둑질이라 언급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높은 강도의 심각한 명령입니까! 십일조 폐지론자들, 십일조 거부자들, 십일조가 아까워 인색한 자들, 수입의 10%는 과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그래서 쓰고 난 잔돈푼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헌금함에 넣는 그 손의 주인들은 십일조 명령에 쓰인 어휘들을 곱씹으며 읽고 또 읽어볼 것을 강력히 권하는바 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주인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삼단논법이 명확히 증명 됨에도 불구하고 재물을 주인으로 삼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의 마음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6:21)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재물이 주인이면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성령으로 심고, 영생을 거둡니다. 기도를 심고, 찬양을 심고, 복음을 심고, 예배를 심고, 감사를 심고, 마땅히 십일조를 심습니다. 인색하게 말고 풍성하게, 즉흥적으로 말고 정성으로, 쓰고 남은 것 말고 우선적으로 심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 된 믿음에서 시작되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악을 심고 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적게 심고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소홀히, 마지못해, 또는 억지와 인색함으로 심고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복음의 밀알로 사용되어지기 위한, 구제하고 섬기는 도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더욱 겸손히 섬기며, 영혼구원을 위해 쓰임 받아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복음전파의 순환을 위한 베어링의 역할을 합니다.
(말라기 3장 11-12)"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 드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는 복을 주시고, 전화위복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며,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섬기는 교회 제단에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내는 십일조라고 자기 마음대로 구제나 개척교회 선교비로 사용하면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임의로 사용한 것이 되어 오히려 죄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섬기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상의 감사헌금, 주일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절기헌금, 십일조 등,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물은 억지로 해서는 안되며 장난치듯 해서도 안됩니다.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일 드리는 자의 마음이 내켜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헌금을 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보통 네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노예처럼 헌금합니다. 헌금을 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상한 설교에 심취하거나, 은사주의에 빠진 어떤 이상한 목사의 무당같은 발언 때문에 두려워서 내는 헌금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헌금입니다.
둘째, 계산적으로 헌금합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의 헌금을 하면 1,000만 원의 수익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도 잘못된 헌긍입니다.
셋째, 의무저으로 헌금합니다. 헌금을 낼만한 형편이 아닌데도 안수집사니까, 권사니까, 장로니까 체면상 헌금합니다. 이것도 잘못된 헌금입니다.
이상 세 종류의 헌금은 성경이 가르친 헌금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헌금에서 교인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9장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다면 진정한 헌금은 무엇이며, 어떤 헌금이 하나님께 열납 되는 헌금일까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감사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입니다.
(고후 8:3-4)“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자신이 드릴 십일조로 어려운 이웃 직접 도우면 안되냐고 묻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하나님 뜻을 따라 바르게 써야 합니다. 자기 맘대로 대상을 골라 쓰는 건 옳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 드리는 헌금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농경문화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의미하고, 따라서 강요해선 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십일조는 아브라함, 야곱, 유대공동체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1:42'에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박하와 운향, 채소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외식과 자기과시태도는 옳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십일조는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바로 벌고, 바로 바치고, 바로 쓰는 헌금관리의 삼대원칙은 철저히 준수돼야 합니다. 십일조는 드리는 사람의 자발적 행위여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동기여야 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헌금은 사람들(레위인, 과부, 나그네, 고아)을 섬기고 구제하는 데 사용 되어야하며, 교회의 행정과 운영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 되어야 합니다.
과거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신앙이 쇠퇴하면서 십일조 신앙이 죽고 형식과 외식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 신앙의 퇴조를 도둑질이라고 맹공했습니다. 이 맹공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교회가 십일조를 강요한다든지 십일조를 잘못 사용한다는 이유로 십일조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은 십일조의 기본 정신입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내 마음에 드는 대상을 골라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헌금자세가 아닙니다.
그래도 나는 십일조를 내가 드리고 싶은 곳에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과 먼저 이 문제를 의논하면서 본인의 뜻을 전하고 지도를 받으시기를 권면드립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목사님과 함께 도울 교회나 대상을 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내 이름으로 누군가를 돕게되면 그 사람은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거나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것을 떼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정직히 행하며,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ANATHA !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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