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길잡이5강 : 하늘에 쌓는 보물, 땅에 쌓는 보물]-1 현명인목사
[마태복음 6:19-24]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신앙길잡이5강 : 하늘에 쌓는 보물, 땅에 쌓는 보물]-1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대부분 돈이라고 대답합니다. 잘 못된 대답은 아닙니다. 돈 좋아한다고 다 속물은 아닙니다. 삶이 팍팍해 질수록 더 절실해지는 게 돈이기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론 돈 때문에 가슴 아파하거나 절망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자본주의에서의 돈의 가치와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난과 부를 가르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한 성공의 대가로 당당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소중하게 여기던 그 돈은 자신의 수중에서 다 사라지고 맙니다. 인생 자체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기 때문이고, 들에 핀 꽃처럼 시들고 떨어져 바람 불면 날아가, 그 자리에 있었던 자취도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인생들이 쌓아 놓은 이 땅위의 모든 재물들은 영원히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보물은 마태복음 6:20절의 말씀대로,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는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해석되어지는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시편 39편 6절 말씀에 “분명히 모든 사람은 헛된 모습 속에서 걷나니, 분명히 그들은 헛되이 소동하나이다. 그가 재물을 쌓으나 누가 그것을 거둘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땅위에 쌓여진 재물들을 언젠가는 손에서 놓게 된다는 뜻입니다. 힘겹게 벌어서 쌓아 놓아도 나중에는 남 좋은 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명확한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의 창고에는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이 세상 모든 것은 새로운 것 없이 그저 돌고 돕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그 어떤 것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성인군자라고 해도 돈과 손절한 채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나, 오욕칠정(五慾七情)이 거의 대부분 돈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돈 때문에 울고 웃고, 난리를 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돈을 신격화 하여 거룩히 여기며 떠받듭니다. ‘내 주머니의 푼돈이 남의 주머니에 있는 거금보다 낫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고 했습니다. 칼 샌드버그는 ‘돈이란 힘이고 자유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기도 한 동시에, 최대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돈의 양면성입니다.
믿는 자들이든 불신자들이든, 사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쉬쉬하고, 돈 이야기만 나오면 저 뒤에 가서 이야기 하고, 돈 이야기만 나오면 비밀스레 행동하고, 무리 지어졌던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삶과 신앙을 말하려면 돈 앞에 당당히 서야 합니다. 돈은 그 사람의 삶과 인격과 신앙을 드러내는 일종의 시험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질주의가 심화되고 팽배화된 ‘유물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는, 곧 정신적인 모든 현상들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리적이라고 하는 '물리주의'와 밀접하게 연관 됩니다.
돈만을 유일한 존재로 보는 '공산주의식 유물론'도 있고, 돈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장하는 '자본주식 유물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표현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그 저변은 동일하게 물질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주의가 심화되고 팽배화된 사회에서 돈을 소유하기 위해 탐욕의 무저갱을 헤메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 같으며, 양심도 명예도 거기에 빠지면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탐욕을 부리는 순간 무저갱 안으로 발을 내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만 자신의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고, 오직 돈만이 사람의 오감을 살려주는 제6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들 합니다. 이것이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행복의 근원도 돈에서 찾습니다. 돈에 쇠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을 보장해주는 보호막이 되고, 자존심과 자존감의 깃발도 높이 세워주고, 나아가 생명과 건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돈을 꼽습니다.
돈에 대한 그릇된 이상론은 결국 돈의 횡포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고, 돈이 법을, 돈이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참담한 현실은 돈 앞에 무릎 꿇는 교회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현상은 지금 이 시대의 경제가치 상황을 통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돈은 경제적인 가치나 화폐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영역으로 월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정신은 물론이고 가치관과 전인격까지도 조종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배 아파 하면서 헐뜯고,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의 일을 해 주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을 사물의 이치라고 합리화 시킵니다. 세상 맘몬에게 조종 되어지는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합리화를 거부해야 합니다. <계속>
MARANATHA !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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