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피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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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피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의 기도

김진호 0 3354

십자가, 예수, 나무, 교회, 그리스도, 기독교, 그림, 믿음, 가톨릭, 천주교, 종교, 부활


<베드로전서 3장10절에서12절>의 말씀을 보면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로마의 박해를 당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한 교훈이었다. 즉 성도는 아무리 악한 것이라 하여도 그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되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인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야말로 이러한 말씀이 주시는 권고를 잘 받아서 온갖 멸시와 박해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그들을(로마의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그 신앙의 인격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 로마제국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진리로 굴복시켰다. 이처럼 기도란 먼저 기도하는 자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꽃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알게하는) 향기가 발산 되는 것이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고백이 먼저 되어야 하고, 진리를 간구하는 기도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혹, 악을 만난다 해도 그 악을 처단하려는 의도의 기도 보다는 그 악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이며, 이와 같은 기도를 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기도를 본받는 기도는 물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서 그리스도를 닮는 그런 성도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참된 기도를 하지 않는 성도는 그 인격이 좋지 못함은 물론, 그의 언행심사 속에서는 늘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냄새가 풍겨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이나 자랑을 일삼기가 쉬우며, 하나님께 대한 불신, 원망, 교만이나 이웃에 대한 시기 적개심등이 은연 중 드러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 <잠언 27장9절>은 영적인 해석으로 이렇게 교훈 한다. "기름(성령)과 향(기도)이 사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그리스도의)의 충성(모범)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고린도후서 2장14절>도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하며 기록한다. 이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성도의 기도를 흠향하시는 하나님은 그 성도의 기도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가를 맡으시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성도의 기도는 구원을 얻는 자에게든 못 얻는 자에게든 악취를 발하는 냄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그런 기도이어야만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성도가 예수의 증인으로서 세상속으로 나아가 예수를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역자로서의 갖추어야할 덕목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기도'인데, 그 기도는 성도의 마음에서 나는 향기임에는 분명하다 하겠지만, 그 향기가 그리스도로 인해 나는 '기분좋은 향기' 이어야만 하고, 그 향기를 맡는 자는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로 맡아져야 하고, 성도가 그런 향기를 발할 줄 알 때에, 비로소 전도의 꽃은 피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 꽃은 결국엔 전도의 열매로 까지 맺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갔던 스데반을 떠올려 보자! 그 스데반의 기도(향기)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였으면 사울(바울)의 그 완악한 마음에 그리스도를 아는 동요가 일어났었겠는가?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러한 살벌한 상항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를 발한 스데반의 기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한 그 용서의 기도로 통해 아마도 그 때 부터 사울(바울)의 마음에도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풍겨지지 않았을까...? 나름 필자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스데반의 이러한 기도는 물론, 성도가 해야할 모범적인 기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본을 보여주셨던 기도였었다. <누가복음 23장43절>에서 예수님은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신다. 그러자 그 예수님의 기도를 들었던 사람 중 로마 장교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의 마음도 그 그리스도의 향기로 인해 동요되고 말았었다. 그래서 그러한 그를 <47절>에서 증언하기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예수)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라는 기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성도의 기도는 '그리스도'처럼, 또는 '스데반'처럼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로 발해야 한다. 악을 악으로 갚는 그런 방식의 기도가 아니라, 선(그리스도)으로 악을 이기는 방식의 기도를 드림이 그리스도를 본 받는 기도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성도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뭇 사람들이 알아 차리도록 하는 그런 기도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이에게는 생명으로, 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구실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섭리인 것이다. 


그 옛날 족장 교회 시대 때에, '가인'의 후예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기도했던 '셋'을 무시했으며, 소돔과 고모라인들 역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기도했던 아브라함을 본 받지 못했기에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말았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기도했다는 의미는 또한 어떤 의미인가?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지 않는 기도, 바로 이러한 기도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부르는 기도이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 즉,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뿌려야 할 그런 시대이다. 악한 자이든, 선한 자이든 누구에게든 이 그리스도의 피의 향기를 맡도록 해야 한다. 새 언약이 성취된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떤 이에게나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맡도록 해야만 한다. 용서의 기도, 화해의 기도, 이 기도만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발하는 그런 기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사랑의 기도 만이, 온 세상의 더러움과 악치를 씻어내는 기도 임은 물론,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성도의 기도, 즉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사실을 유념하는 그런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 김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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