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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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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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왕상17:8-16))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에는 인간의 상식과 배치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상식이나 경험과는 차이가 있는 가치관이 요구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했던 시대에 가장 악한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아합은 북 왕국 제 6대 왕 오므리의 아들로 주전 874년부터 22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오므리와 자신의 아내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나봇을 죽였던 탐욕적인 악한 왕이었습니다. 다행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가 그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그 사실이 축복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엘리야를 핍박하였으며 끝까지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함을 깨닫게 하려고 이스라엘에 가뭄을 내립니다. 엘리야는 그 사실을 아합에게 예언한 후에 그릿 시냇가로 피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를 보내서 떡과 고기를 공급해주심으로 엘리야의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그릿 시내물 마저 마르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 당시에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계층은 남편을 잃어버린 과부들이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엘리야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과부에게 가서 머물라고 하시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르밧 과부를 찾아갑니다. 10절에 보니까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가뭄으로 마실 물도 귀한 상황에서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 과부가 물을 가지러 갑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엘리야는 점점 상식 밖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장기를 면하기 위해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는 엘리야를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 상황은 계속 이어집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 얼마나 절박한 말입니까? 남은 것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뿐이라는 말은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전부이며 그 후에는 살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또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 장면을 보면 엘리야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런 요구가 과연 하나님의 선지자가 할 수 있는 말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엘리야의 말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는 샤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전합니다. 과부는 이 말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믿음으로 엘리야의 그 말에 순종합니다. 15, 16절에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구든지 상식적인 하나님만을 믿는다면 결국 상식적인 경험만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상식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상식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으며 또한 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상식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본문의 사건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 역사의 성격입니다. 분명히 이 사건은 상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과부에게 인계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먹을 것을 주시다가 갑자기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명령이겠습니까? 왜 하필이면 가장 가난한 과부에게 가라고 하실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엘리야의 입장도 하나님의 어떤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리고 과부의 입장에서도 갑자기 벌어진 엘리야의 황당한 요구에 대해서 순종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엘리야나 과부나 모두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상식의 범위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편에서 보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기적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전능하신 능력을 소유한 분이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사건은 순종의 댓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순종은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코 엘리야의 인간적인 카리스마나 과부의 일방적인 기복적 믿음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에 순종했던 엘리야와 과부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하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둘째. 이 사건의 기적은 믿음에 의해서 현실화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기적의 배경은 극단적으로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선택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과부의 마지막 먹을 것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도대체 그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먹고 죽으려는 음식을 포기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빙자한 엘리야의 거짓말이라고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결코 그들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먹을 것의 전부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들이 지금 가장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결단의 근거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결단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결코 현실의 절박함에 지배당하지 않았으며 오직 믿음으로 행동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이 결단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현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은 후 그들의 현실은 새로운 상황으로 변하였습니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비밀입니다. 믿음은 결코 머리 속의 생각만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단할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결단의 근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개인의 욕망이나 타인의 강요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산 경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 사건은 바로 이러한 두 사람의 믿음의 아름다운 조화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현실적인 삶의 순간 순간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과부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사르밧 과부에 대한 방문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결코 엘리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진 행동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사르밧 과부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엘리야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야를 돕는 방법을 달리하십니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던 엘리야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선명하게 구별된 그의 삶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선지자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영혼을 구원해야 하는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본문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극심한 가뭄 속에서 기적으로 먹고 살았다는 동화 같은 결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적인 현실을 뛰어넘어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증거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너의 믿음을 증명해보라고 요구하십니다. 히브리서는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거짓이나 욕심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부도덕한 가치관이나 생활을 격려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우리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을 요구합니다. 결코 우리의 잘못된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맺어지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식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심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고귀한 목표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현실을 걱정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 마음은 상식적인 생각에 끌려 다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삶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을 설명하는 지식은 충만하지만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임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있음을 만민에게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순종 사이에 이 세상이 알 수 없는 믿음의 큰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게 부어진 것 같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 상식을 뛰어 넘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믿음의 비밀을 여러분 모두가 깨닫고 그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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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호 목사

열린문교회 담임
신앙상담 : 010-2604-2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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