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주어야 할 유산 - 이장우 목사
물려주어야 할 유산
사울은 자신의 사위이며 나라를 벼랑 끝에서 구한 다윗을 왜 기회만 생기면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실 다윗은 국가의 훈장을 받으며 영웅의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생각 속에는 온통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뿐입니다. 사울의 내면에는 다윗을 죽이려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울은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의 편이 되어 보호하려는 것을 알고 요나단에 노를 발하며 아버지로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이렇게 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삼상20:30). 아니 아버지로서 어떻게 아들에게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 “패역 부도한 계집의 소생”이란 ‘범죄를 저지른 여자, 반역하는 구부러진 여인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며 다윗에게 동조하고 있는 요나단 역시 사울에게 반역한 자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요나단을 다윗의 편에 선 반역자로 보고 있으며 다윗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요나단에게 나타낸 것입니다. 아들 요나단에게까지 심하게 욕을 하면서 극한 분노는 드러내는 사울의 모습을 그가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삼상20:31). 사울은 왜 다윗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여과 없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윗이 왕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가 살아 있는 한 요나단의 왕권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고 있는 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한다.”는 것은 다윗으로 인하여 요나단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염려는 허상일 뿐입니다. 사울은 이미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버림을 받았고, 사울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종말을 향하여 치달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로 넘어갈 것을 이미 사무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왕권 유지를 위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며, 다윗을 죽임으로 그 왕위를 요나단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편 사울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다윗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왕위를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다윗을 결코 죽일 수 없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누구의 나라입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사울의 나라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보좌는 하나님의 것으로 인간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에 불과합니다.
나라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을 물려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꼭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물려준다 하여도 그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을 비록 물려주지 못하지만 그 속에 예수를 심어주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신앙을 물려준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외하는 믿음이 대대에 흘러가고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바로 믿음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울과 같이 어리석게 세상적인 유산을 물려주려고 하지 말고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