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세기 5:21-24)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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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세기 5:21-24)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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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세기 5:21-24)


오늘 아침 이 찬양의 가사가 힘이 된다. ‘주 찬양하고 기도하며 네 본분 힘써 다하라. 주 약속하신 모든 은혜 네게서 이뤄지리라 참되고 의지하는 자 주께서 기억하시리’ 아멘.


나에겐 인생 후반전 꿈이 있다. 다음 세대에게 진짜 복음의 맛과 멋을 전해주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 오염시킨 복음의 맛과 멋을 정화시켜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 하늘부흥이 일어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스페이스 R>이란 공간을 세웠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분의 뜨거운 기도와 후원자들의 헌신적인 후원 덕분에 나름 공간이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되어져 여기저기 공간을 이용하려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을 거절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다. 이방인처럼 변해가는 다음 세대에 믿음의 세대 체인지를 이루며 하늘부흥을 이루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일을 집중적으로 할 것이다. 하나는 젊은 사역자들을 세우는 일과 다음 세대들에게 믿음을 전수할 새로운 교육 대안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은 모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꿈꿀 수 없는 일이며, 젊지 않은 내가 도전할 수 없는 일이고, 배움이 부족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왜 나에게 이런 꿈을 주셨을까? 내가 할 수 없기에 맡기셨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없으니 기도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할 수 없으니 내가 아니라 젊은 세대 사역자를 세울 수 있고, 내가 할 수 없으니 교육의 대안을 만들 사람들과 협력하며 지원하여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을 만들기로 작정하는 순간 정말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보인 다. 나는 내 후반전의 삶을 소중한 일을 위해 위대한 부흥을 만들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을 할 것이다. 내 이름과 내 자리와 내 것을 다 포기하고 말이다. 주님 이 종을 기억하시고 주 약속하신 것을 이루소서.


어제는 목회사관학교 4기생들이 방문하여 귀한 식사와 화분 그리고 후원금을 전달하시며 우리의 사기를 고조시켜주셨다. 늘 귀한 사랑으로 함께하시는 이런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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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셋의 후손 중 아주 중요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바로 에녹과 노아다. 먼저 에녹의 삶을 깊이 묵상해 본다. 21-24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의 아버지가 구백육십이 세를 살았고 그의 아들이 구백육십구 세를 살았다. 그런데 유독 에녹은 그 중간에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이 땅을 떠난 것이다.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아버지 야렛이 살았으니 말이다. 창5:19절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이로는 당대의 삶에서 너무 작게 살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사람이 주목된다. 그는 비록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삶의 표현이 나로 멈추어 서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살고 죽었더라>는 인생의 삶이 연속되는 죄악의 세상에서 그는 그저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삶을 살았다는 이 말이 매우 큰 울림을 가지고 이 아침 나를 설레게 한다. 그는 죽지 않았고 다만 세상에 있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여기 동행하다는 단어는 ‘할라크’인데 뜻은 ‘걷다’, ‘산책하다’ 는 뜻으로 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삼백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그는 그렇게 멋진 삶을 살았을까? 그 힌트가 되는 구절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를 낳을 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그의 이름을 추적해 보면 아주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므두셀라’라는 이름 히브리어 ‘므투셸라흐’는 ‘그가 죽을 때 [홍수를] 보낸다’는 뜻이다. 조금 더 의역하면 므두셀라가 죽을 때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에녹은 6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이를 낳은 것이다. 이 아이가 죽으면 세상을 심판하는 홍수가 온다고 말이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해 노아의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다.


에녹은 심판의 경고를 듣고 아이를 낳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안하게 살던 사람들은 에녹을 만날 때 힘들었을 것이다. 심판을 외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올 것을 외치는 삶 삼백년은 매우 힘겨운 시간일 것이다. 므두셀라가 무려 969세를 살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에 취해 그저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만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그렇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은 세상의 심판을 예고하며 수없는 욕을 먹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삼백년을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 있지 않도록 삼백년 만에 하늘로 데려가신 것이다. 무엇이 진정 잘사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는 아침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진정 그들이 원하는 동행이 에녹과 같은 동행일까? 오늘 내 모습은 어떤까?


900년을 사는 시대에 남들 삼분의 일인 365년을 산 에녹, 그렇게 사는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면서 욕을 얻어먹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새삼 깊이 사순절에 묵상하게 된다.


주님은 물으신다. 그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느냐고~

솔직히 날마다 묵상하며 주님을 따르는 삶은 세상적으로 너무 힘겹고 어리석다. 가끔은 말씀없이 살고 싶은 날도 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며, 사명을 향해 가다 보니 나는 남들이 하는 것을 해 보지 못하고 산다. 타고 다니는 차에 블렉박스 하나를 9년째 달지 못한다. 작은교회에 나누어야 하니 나를 위해 쓰지 못한다. 아내와 자녀들이 말한다. 아빠는 가정에서 부도수표라고~


오늘 에녹의 삶이 그러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며 그를 일찍 세상에 있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왜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은 표면에 나타난 것이며 그 내면에 주신 평안함과 은혜는 그를 삼백년 동안 춤추게 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무엇이 잘사는 것일까? 남들처럼 오래사는 것일까? 부요하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에녹처럼 삼백년 동안 실컷 욕먹으면서 그러나 훗날의 노아를 깨워 방주를 준비하게 하는 삶일까?


포장의 시대, 현란한 지식의 어휘로 난무한 시대 절대 욕먹는 짓은 하지 않고 이리저리 좋은 말, 좋은 포장을 통해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시대 무엇이 잘 사는 것이며, 무엇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일까?


주님, 이 종이 그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이 종으로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그저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그저 늙어 기운없어 죽은 인생이 아니라 사명이 다하여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삶이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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