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사냥꾼 (창세기 10:1-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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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사냥꾼 (창세기 10:1-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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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사냥꾼 (창세기 10:1-20)


어제는 보궐선거가 있어 새로운 지도자가 뽑혔다. 국민을 보지 않고 정쟁을 격화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청지기들로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어제 교회교육 대안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매주 수요일마다 송파에서부터 달려오셔서 교회 교육의 대안을 찾기 위해 함께해 주시는 미래교육에 힘쓰는 더봄에 감사드린다.


미래교육을 성경교육에 접목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향이 맞기에 나는 도전한다. 내가 가는 길은 알아서 가는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이기에 길을 만드는 작업이라 늘 쉽지 않다. 주님, 이 종에게 힘과 지혜를 주소서. 더봄과 땡스기브를 축복하사 이 소중한 사역이 아름다운 열매로 한국교회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하소서.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5주차 수업이 있다. 이제 다음 주면 벌써 한 학기의 절반이다. 주님, 이름만 있는 곳이 아니라 진정 이름대로 목회자들을 위한 사관학교로 진짜 목사를 세워가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주님과 말씀 앞에 서고, 영혼을 향하는 진정한 목사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노아 자손들의 족보가 기록되고 있다. 1절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여기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자손의 순서가 셈과 함과 야벳이다. 그런데 2절부터 시작해 자손들의 족보는 거꾸로 야벳과 함과 셈의 순서로 되어 있다. 신학자들은 이를 유식한 말로 점진적 계시라는 말로 표현한다. 언약의 계승자가 된 셈을 맨 나중에 기술한다는 것이다.


야벳의 자손은 유럽에 정착한 자손이 되고, 함의 자손은 아프리카에 정착한 자손이 되었다. 이 두 자손의 계보중에 눈에 뛰는 구절이 있다. 8-9절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구스는 또 니므롯을 낳았는데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위대한 용사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탁월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탁월한 사냥꾼은 니므롯처럼 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세상에 첫 용사>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 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 사람이 많은 이름 중에서 눈에 뛰는 것은 당연하다. 바벨과 니느웨를 아우르는 지역에 산 이들이다.


이런 멋진 칭호를 받은 <니므롯>은 어떤 사람일까? 그 이름의 뜻이 <반역>이란 의미를 담은 것으로 봐서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란 의미가 좋은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을 사냥하여 노예로 삼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사회에서 악을 뜻하는 속담이 되었는데 이는 마치 금세기에 히틀러의 이름이 악과 잔인성을 뜻하는 속담처럼 당대에 아주 악한 폭군의 대명사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니므롯처럼>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에게서 이런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과 함께 이런 니므롯같은 사람이 세상적으론 성공자라고 일컬어지는 시대를 살면서 무엇이 축복이고 무엇이 저주인지를 다시 묵상하게 된다.


12절에 그는 레센이란 큰 성읍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12절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오늘 아침 축복이 무엇이고, 저주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되는 아침이다. 과연 무엇이 축복일까? 무엇이 저주일까?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으로 표현된 <니므롯>의 삶은 그로 인해 분명 세상에서 큰 성을 건설하였다. 그는 사람을 사냥하여 자신의 노예로 부리며 큰 성을 건설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앞에 용감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역설적 표현이다. 오늘 하나님앞에 우리의 자세는 겸손함이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한다. 문제는 하나님앞에 용감한 니므롯이 큰 성을 건설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앞에 용감하게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무시하며 노예 부리듯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앞에 겸손하게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람을 사랑으로 섬겨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하루 주님은 내게 진정한 복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예배하며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겨 세워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나는 인생 후반전 사람을 세우는 사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드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는 올라가는 길이 훨씬 더 편하고 쉽다. 관성의 법칙처럼 올라가는 것에 힘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이미 힘이 다 빠져 위험할 뿐 아니라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이 사명을 가슴에 안고 영혼 사냥꾼이 아니라 영혼을 노예로 삼는 자가 아니라 영혼을 세워드리는 자로 복 있는 사람으로 인생을 마치고 싶다.


세상은 영혼 사냥꾼이 복이 있다고 외친다. 실제로 영혼 사냥꾼이 되어 말 한 마디에 노예처럼 사람들이 복종하는 그런 멋진 삶을 모두가 욕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다. 때문에 오늘도 겸손히 진정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복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주님, 세상의 일장춘몽과 같은 큰 성을 건설하는 영혼 사냥꾼이 살다가 밀려나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길을 만드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시고 영혼을 세우는 자로 부르시는 날 주 앞에 서게 하소서.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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