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당하는 삶 - 이장우 목사
감시당하는 삶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감시를 당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 문밖을 나서면 건물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몇 발자국만 나서면 온통 거리에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행적이 그대로 감시 카메라에 잡히는 동시에 노출되어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도 거리거리마다 없는 곳이 별로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감시를 당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감시를 당하면서 살았고 유리 상자 안에서 살듯이 나는 숨기려고 하는데 노출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집니다. 사울이 다윗을 에워싸고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상황이 되어 사울에게 잡힐 수밖에 없을 때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했으니 급히 오라고 하여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위하여 눈앞에 다윗을 두고 떠납니다. 다윗은 이 때 엔게디로 올라가서 요새에 머물게 됩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와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고(삼상24:1)고 알려줍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사람이 와서 다윗에 대한 위치를 보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십 사람들이 다윗의 행적을 은밀하게 살피고 있다가 사울이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고를 했는지 아니면 사울의 신하 중 누가 다윗을 먼 발치에서 감시하고 있다고 보고를 했는지를 모릅니다. 여기에서 누가 사울에게 즉시 보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동태와 행적을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다가 그의 위치를 사울에게 정확하게 보고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사울에게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보고한 것입니다.
엔게디는 ‘염소의 샘, 새끼 염소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은 헤브론의 남쪽 27km, 십에서 동쪽으로 25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엔게디에는 큰 바위들이 있는 산악 지대와 깊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해 쪽으로는 절벽과 동굴들이 많아서 요새라고 부르며 은신처로 적합한 곳입니다. 이런 엔게디를 황무지, 광야라고 표현함으로 사울에게 다윗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엔게디는 지형이 험준한 곳이므로 다윗을 추적하지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곳입니다. 실제로 엔게디 동굴에서 다윗을 추적하던 사울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요새와 같은 험준한 곳에 있는 다윗의 동태를 살피며 사울에게 보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가족이든지, 세상 사람들이든지 우리 삶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우리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핍박하기도 하며 조롱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의 감시가 있습니다. 동방의 의로운 욥의 동태를 감시하며 하나님께 참소하던 사탄이 변함없이 우리들을 영적으로 감시 카메라와 같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탄은 먹잇감을 찾는 굶주린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노리고 있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사탄은 때로 우리의 심령을 건드리며 시험에 빠지게도 하며 실족하여 넘어지게도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여지없이 달려와서 물고 가려고 합니다.
우리를 공격하려고 살피고 있는 사탄의 세력 앞에서 근신하고 깨어 있어 믿음을 굳게 지키며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께 붙어 있어 주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