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관계 (창세기 13:1-13)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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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관계 (창세기 13:1-13)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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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관계 (창세기 13:1-13)


주님 오늘도 내 마음을 만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도 저의 마음을 만지시고 새 힘으로 충전케 하사 주님을 향해 이 몸을 드릴 수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주일 특별히 작은교회 목사님의 은퇴감사예배를 준비하는 날 은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애굽에서 큰 실패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선 아브람 일행이 네게브를 지나 벧엘로 와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후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놀랍다. 4-6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실패의 자리가 이들을 소유가 많게 하는 놀라운 축복의 자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지만 애굽 왕 바로가 준 재산이 큰 요인이 된 이 부요는 놀랍게도 이들 삼촌과 조카의 동거를 갈라놓는 이유가 된다.


이때의 상태는 비좁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심각한 다툼이 일어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스런 상황임을 느낄 수 있다. 7절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소유가 많아지면서 그 소유를 유지하려는 욕망으로 가축을 치는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랑을 놓치고, 소유를 유지하려는 욕망에 빠진 것이다. 가축을 치는 실무자들인 목자 입장에서 주인에게 충성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 둘 사이의 싸움은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자의 소리를 듣는 주인들은 서운한 감정들이 솟아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때 아브람은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오늘 아침 큰 울림으로 주어지는 말씀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이다.


빛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 믿음의 초행길을 지나 조금 믿음의 지식이 쌓일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다툼의 문제이다. 뭔가 신앙의 삶을 알기는 아는데 그 기준이 자신을 성찰하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할 때 조금 아는 신앙의 지식은 늘 그 사람이 거하는 곳에 빛이 아니라 다툼을 만들곤 한다.


소유의 많음은 도구일 뿐이다. 이 단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무엇이든 그것은 주변에 다툼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소유가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지식이 성숙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다툼은 믿음의 성숙으로 가야 할 중요한 자리임을 알리는 싸인이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것을 보았다. 조카 롯과의 다툼으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 보기에 맨날 다투는 삼촌과 조카의 모습은 천국 대사의 삶이 아니라 지옥 대사가 되어버릴 위기였던 것이다.


욕망의 화신이 되어 조카를 이기면 재산은 지킬 수 있으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천국대사의 사명을 이루지 못할 위기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8-9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이제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다툼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양보하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이것을 볼 때 얼마나 놀랐을까? 세상은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생존경쟁을 펼치며 강한 자가 이기는 삶인데 아브람은 강한 자가 양보하는 놀라운 결정을 했으니 당시의 톱 뉴스가 되었을 것이며, 거룩한 빛이 되었을 것이다. 할렐루야~


오늘 아침 이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브람은 기근을 맞아 애굽으로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살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며 이제 믿음의 진보가 생긴 것이다. 살아남고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삶이 더 중요하기에 그는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어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양보한 것이다.


오늘 주님은 물으신다. 너의 신앙의 자리는 진보가 일어나고 있느냐고 ... 

늘 살아남기 위해, 나를 좀 더 잘 살기 위해, 더 편하기 위해 사는 믿음 초행길처럼 주변의 사람마저 팔아버리는 그런 신앙의 삶은 아닌지 ...  아니면 믿음의 진보로 이제는 거룩한 빛으로 주변에 빛을 비추기 위해 상대방에게 먼저 좋은 것을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물으신다.


사실 내려가는 길을 만드는 나의 삶은 다툼을 걸어오는 롯에게 조차 내 자리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음을 보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나의 사역은 사람들을 세우고 지지해주고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사역이어야 한다. 내 것을 내려놓고 꼭 필요한 사람들을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 아니 주님은 오늘 말씀으로 내 사역이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벧엘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고 수시로 벌어지는 싸움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아브람이 갈등하며 걸어갔던 그 길을 이 아침 깊이 묵상한다. 그의 목자들이 외치는 소리, 그리고 아내가 외치는 소리, 그리고 가장 깊이 자신의 내면에서 <왜 네가 그래야 하느냐?>고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아브람이 홀로 씨름했을 그 자리를 묵상해 본다. 주님~


그는 지켜야 할 소유를 내려놓고 조카 롯과의 사랑의 관계를 지키며 천국 대사로서의 사명을 지켜내는 위대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소유를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할 자리를 사랑의 빛이 보여지는 자리로 만들어 낸 아브람의 믿음의 진보가 간절히 소망되는 자리다. 충분히 싸울 이유가 분명하고 이것이 아님에도 그 자리를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지는 자리로 만든 그 믿음의 진보~


주님,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 이 종에게 믿음의 진보를 허락하사 이런 변화를 이루게 하소서. 내가 아는 작은 지식으로 다툼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며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내게 붙여준 사람을 세워드리고 주변에 거룩한 빛이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스페이스 R> 사역이 자리를 잡고 다음세대 사역자를 일으키도록

4. 땡스기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세워지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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