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고린도전서 1:1-3)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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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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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고린도전서 1:1-3)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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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고린도전서 1:1-3)


주일을 보내고 어제 아내는 몸살을 앓았다. 아직은 오래도록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재활의 시간이 쉽지 않다. 휴일이 겹치는 오늘 그동안 어려운 일로 꼭 찾아뵈어야 했지만, 아내가 아파서 함께 찾아뵙지 못하는 분을 만난다. 소중한 분을 만나는 기쁨은 행복이다.


오늘부터 고린도전서 말씀묵상을 시작한다. 유진 피터슨은 고린도전서 서문에서 고린도 지역을 이렇게 평한다. <고대에 제멋대로 굴고, 독주를 마시며, 성적으로 문란한 무리라는 평판을 받던 곳이다.>


실제로 고린도 지역은 코린토스만과 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운하가 있어 아시아와 이탈리아를 연결시키는 도시로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였다. 자연스럽게 물질주의적 사치와 향락이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이며 다양한 인종이 살았다.


이곳에서 바울은 1년 6개월을 지내며 복음을 전하고 그들가운데 기적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세웠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다른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가 도착했다. 교회의 사정이 나빠졌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이어서 또 한 통의 편지를 받는데 싸움이 격해지고, 도덕이 무너졌으며, 초자연적인 예배 즉 신비적인 것에 집착하며 이기적인 수단으로 예배가 변질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도움을 요청받는다.


이런 요청을 받고 첫 번째로 목회적 대응에 대한 편지를 쓴 것이 오늘부터 묵상할 고린도전서이다. 그 시작을 묵상한다. 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여러 문제를 만난 교회를 향해 그 중에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며 교회가 분열과 다툼의 상황에 놓인 상황에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기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로 전권(全權)을 위임받은 특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사도’라는 직분은 원래 오직 그리스도가 임명을 해서 직접 보낸 열두 제자만을 가리켰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행9:15)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했음을 외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당황스런 상황에 바울은 당당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냄을 받은 자임을 밝히고 있다. 오늘 나는 어떻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어 복음이 다음세대에 확장되게 하는 일에 부름을 받은 자이다. 아멘.


삶을 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면 그 삶과 사역은 뻔해진다. 오늘 아침 사도 바울의 자기 고백이 나를 설레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자신을 당당하게 밝히는 그의 정체성이 멋지다.


아울러 그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거룩하여지고’의 헬라어 ‘헤기아스메노이스’은 완료형 분사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됨을 의미한다.


분명 그는 분열과 다툼, 성적 타락과 신비주의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만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에도 거룩하여지고 있는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이 큰 감동으로 들려진다.


더 나아가 바울은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교회를 정의하고 있다.


정리하면 교회는 구체적인 지역에 근거를 둔 공동체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는 구별된 사람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는 자들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도 바울이 교회로서 일어날 수 없는 큰 문제 앞에서도 자신과 교회의 정체성을 점검하며 그 정체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늘 삶을 살면서 흔들리는 이유는 외부의 문제에 있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바로 내 안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자신이 누구이며, 또한 교회와 성도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정립하고 있다.


죄인인 성도가 되어가는 과정은 믿음으로 벌어지는 한순간의 결단과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삶과 언어와 태도에 그것이 녹아져 나오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필요한 것이 바로 오늘 사도 바울이 가지는 이 정체성의 확신임을 배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 실패하지 않고 걷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흔들려야 하고, 실패해야 한다.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며 흔들리고,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락된 문화의 한 가운데 세워진 교회, 타락된 습관으로 물든 성도들이 변화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변화는 그런 자신의 연약함속에서도 그런 자신을 거룩하여지도록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믿음으로 붙잡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서는 것이다.


이런 느낌으로 바울이 외친 말씀이 더 선명하게 들려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아멘.


오늘도 이 정체성으로 이 하루를 살아가는 날 되기를 결단한다. 아니 이런 모습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날 되기를 소망한다. 비록 현재의 모습이 실망시켜도 그러나 그 속에 거룩을 시작하신 그분이 계시기에 새로운 피조물로 나타날 것을 믿는다. 아멘.


이제 눈은 침침해지고 여기저기 약함으로 둘써싸여져 가는 내 육체지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종이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비록 약간의 넘어짐과 부족함과 인간으로 어쩔 수 없는 이런 현실을 만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나타날 것이다. 아멘.


이 정체성을 흔들지 않고 오늘도 살아가는 하루가 되자. 할렐루야~

주님, 이 부족한 종을 성도로 불러주시고 아울러 당신의 뜻 가운데 종으로 부르사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의 플렛폼과 비빌언덕이 되게 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어떤 상황에도 당당하게 시인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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